한 해가 다시 저물고 피어난다. 저물고 피어나는 것들, 오고 가는 것들을 가늠할 여유를 찾기는 어렵다.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미뤄 둔 질문들이 스르르 떠오르고 가라앉아 마음이 어지럽고 어렵다. 분명한 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한 마음들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찾아 다투고 적어 두기 어렵다. 곁에서 잠에 든 이의 숨 소리가 고르게 번질 때의 평안과 불안, 그것들만이 내내 선연하다.지난해를 평가하고 새로운 한 해의 계획들을 가늠해야 할 때를 마주하고도 모든 것들은 여전히 어지럽다. 어지럽고 어려운 대로 숱한 말을 쏟아 내고 숱한 글
1. “무능한 겁니다. 할 수 없어 못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안 하는 것은 배신이고 비겁한 변절입니다.” 민변 회장인 김도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와 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이렇게 분노해서 말했다(2021년 12월27일자).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까지 차지한 ‘촛불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이지 않은데 실망해서 했다는 이 말이 내 머리를 채우고 있다. ‘무능일까, 배신일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 노조를 생각했다.2. 노동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로 20여
세상은 변하는 듯 변하지 않고, 나아지는 듯해서 둘러보면 제 자리다. 그럼에도 세상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해 간다. 의심의 여지도 없던 어제의 당위가 오늘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되기도 한다.‘활동가도 노동자냐.’ 며칠 뒤면 벌써 21세기의 스물두 번째 해를 맞이하는데, 아직도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이야. 생각해 보면 새삼스럽지도 않다. 격렬하게 드러내진 못했으나 활동가사회 어디에나 존재했던 오랜 논쟁의 주제였지만, 결론은 그냥저냥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을 뿐 제대로 정리된 의제가 아니었다.오랜 활동 기간을 거쳐 지금은 각종 노동사
법이 여러분에게 원칙적으로 직장을 바꿀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직장을 바꿀 수 있더라도 그 변경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여러분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느냐며 질문자인 필자를 타박할 것이다.그런데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 5명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25조1항 등에 대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찬성 7, 반대 2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
‘삼성’을 분리하자목적이나 뜻을 이루는 성공(成功), 자라서 점점 커지는 성장(成長), 충분히 익거나 혹은 자라서 어른스럽게 되는 성숙(成熟)이 있다, 이 세 가지 삼성(三成)은 모두 긍정적으로 쓰이지만 다르다. 분리하자. 정치적 성공, 경제적 성장, 사회적 성숙을 생각해 보자.높은 지위나 신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되는 것이 출세다. 연예인이나 주목받는 유튜버가 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출세가 있지만 지금도 유력한 방법이 정치적 성공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 정치지만 현실 정치의 핵심은 권력이다. 민주사회에서 권력투쟁은
또 한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장동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대장동 개발 당시 성남시가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에 특혜를 준 것과 관련이 있다.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에서 그 사실을 추궁한 것과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그에게 책임을 지워 중징계하고, 형사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몸통은 수사·처벌하지 않고 꼬리만 조사·감사해서 책임을 물리는 검찰과 성남시의 처사가 그를 자살로 내몰았다. 그러나 검찰총장도 성남시장도 전
지난 2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3차 문화도시로 충남 공주를 비롯해 전남 목포, 경남 밀양, 경기도 수원, 서울 영등포구, 전북 익산 총 6곳을 지정·발표했다. 이로써 1차의 부천·원주·청주 등 7곳과 2차의 강릉·춘천·완주 등 5곳에 더해 17개 도시가 선정됐다. 4차 문화도시 선정도 예고돼 있다. 4차 문화도시에는 무려 49개의 지자체가 지원해 울산·군포·영월 등 11곳이 예비도시로 선정됐다.이 ‘문화도시’ 사업에 따라 해당 지자체는 향후 5년간 국비를 최대 100억원 규모로 지원받고 이에 상응하는 예산을 투입해 최대 200억원 규
는 OTT 웨이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오리지널 콘텐츠다. 지난 11월에 출시된 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은 끝내주는 정치 블랙코미디다. 빠르고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휴대폰으로 감상하기 적합한 30분짜리 12부작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기시감 돋는 깨알 같은 설정에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지지만, 정치혐오와 냉소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의 본질을 사유케 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1. 기시감 돋는 정치 풍자 코미디드라마는 현직 장관 남편의 납치를 둘러싼 소동극을 보여준다. 1주일간 휘몰아치
송년회의 계절, 함께 기후위기 활동을 해 오다 잠시 쉬겠다고 했던 친구를 1년 만에 만나게 됐다. 부스스하던 머리를 자르고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의도에서 퇴근하고 왔다고 했다. “같이 술 마시며 지갑 잃어버리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를 세 번쯤 했을 때, 왜 활동을 업으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직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활동 영역을 포함해 여러 곳에 지원했고, 붙은 곳을 다니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렇지, 돈 주는 곳으로 가야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개인의 삶에서 안정을 찾은
조선일보가 지난 13일 1면과 6면에 문재인 정부 들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각종 위원회가 급증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위원회 공화국 … 文정부서 年 1000개씩 급증’이란 제목으로, 6면엔 ‘정책 병풍 역할 … 위원회 25%가 年 개최 0건’이란 제목으로 각각 보도했다.조선일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 분석해 이 기사를 썼는데, 지난 6월 말 현재 중앙행정기관엔 모두 622개 위원회가, 지방정부엔 모두 2만7천114개 위원회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중앙행정기관 위원회는 올해만 37개가 늘어 최근 10년 동안
장사를 오래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말했다. 좋은 손님은 비슷한 이유로 착하다. 예의를 지키고 제값을 잘 치르고. 그런데 나쁜 손님은 오만가지 다른 이유로 ‘진상’이다. 막말하는 사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바꿔 달라는 사람, 상품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일장 연설하는 사람,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사람, 문이 부서지도록 꽝 닫고 가는 사람, 느닷없이 고소하겠다는 사람, 주차하는 데 고생했으니 물건값을 깎아 달라는 사람, 가게와 무관한 자신의 사연을 밑도 끝도 없이 하소연하는 사람 등등.그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한편의 철학으로 엮
내가 만난 A씨는 2008년에 한 방송사 파견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했다. A씨는 매일 아침 9시 회사에 출근해 회사 내 마련된 본인의 자리에서 회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A씨의 업무는 금전출납 및 회계업무로 회사에서 상시 필요로 하는 업무였으므로 회사는 A씨를 계속 사용하고 싶었고, A씨 역시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A씨는 계속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서에는 프리랜서 계약이라고 적혀 있었다.‘프리랜서’ 단어를 찾아봤다.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1.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의 의의를 한마디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판결 선고를 며칠 앞두고 ‘어떤 판결이 나올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보다 더 대답하기 난감한 것이었다. 당연히 원심판결이 파기돼서 원고 노동자들이 이겨야 한다. 결과는 알 수 없어도 노동자가 이겨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했다. 그렇지만 과연 대법관들도 나처럼 당연하게 여기고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할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나는 내 바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근무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청소대행업체에서 근골격계 질환 징후가 있는 노동자를 채용 취소하는 것이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전화를 건 이는 “노무사들마다 각기 답변이 다르니, 센터에 계신 다른 노무사님들 의견도 꼭 물어 봐 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엔 굉장히 의아했고, 그 다음엔 황당함이 밀려들었다. 문제가 있었다. 질문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업이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관해 몰두했다.청소대행업체가 채용 공고를 띄우면서 자격요건으로 “신체 건강한 자
대학원 시절 나의 연구관심사는 오로지 ‘임금’이었다. 경제학에서도 노동경제학과 계량경제학을 전공한 이유 역시 우리의 임금수준은 어떠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나의 관심사는 임금과 관련된 여러 영역 중에서도 ‘임금불평등’으로 옮겨 갔다. 왜냐하면 임금불평등은 사회적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인데도, 우리 사회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론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령 토너먼트 이론에 따르면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에게는 낮은 임금을 지급해 결국 낮은
대한민국 진보진영과 운동판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2월 초에 토마 피케티 등 세계 각국의 학자가 참여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를 발표했다. 한국의 불평등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소득 평균에서 상위 10%는 하위 50%보다 14배 많았다. 자산 격차는 무려 52배였다. 언론은 기사를 쏟아 냈다. 경향과 한겨레 등 진보언론뿐 아니라 보수 조선일보도 기사를 내보냈다. 굳이 기사에 해설을 붙이지 않더라도 통계 자체가 불평등의 심각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기이한 현상은
곧 2022년이다. 새해 노동조합운동의 과제와 관련해서는 4가지 ‘체제(systems)’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대화 체제, 기업 경영 체제, 안전보건관리 체제, 근로감독 체제다.사회적 대화첫째, 총론적으로 ‘사회적 대화 체제(social dialogue system)’에 참여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적 대화를 노사 양자 사이에, 노사정 삼자 사이에 이뤄지는 공통적 관심사에 대한 정보(information) 교환과 협의(consultation), 그리고 교섭(negotiation)이라고 규정한다. 사회적 대
스물넷 청년 고 김용균은 2018년 12월10일 오후 10시43분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를 혼자 점검하다가 사망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이 현재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진행 중이고, 이달 21일이면 종결된다. 그리고 내년이면 법원의 선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원청과 하청을 전부 가해자로 지목하고 지난해 8월 기소했다.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가해자들의 다툼으로 재판은 1년 넘게 이어졌다.고 김용균은 하청업체의 운전원으로 입사해 화력발전소 연료운반설비 점검작업에 투입된 지 3개월 만에 산업재해로 숨졌다. 국무총
화려한 스미냑 해변을 떠나 향한 곳은 발리섬의 반대편 누사두아 해변이었다. 애당초 이곳에서 발리섬을 떠나 좀 더 한가한 휴양지인 롬복섬이나 롬복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섬인 길리섬을 목표로 했었다. 길리섬은 TV에서 방영된 으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발리에서 롬복섬을 왔다 갔다 할 시간을 생각하면 일주일 정도는 지낼 계획을 짜야 제대로 된 여행이든 휴양이든 뭐든 할 수 있어 보였다. 남은 시간이 3일밖에 없는 이번 여행에서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여행이든 계획은 시간과의 싸움인
캄보디아를 36년간 지배해 온 독재자 훈 센 총리가 장남에게 자리를 넘기겠다고 밝혔다. 권력욕은 끝이 없다. 다만 훈 센은 아들이 선거로 집권해야 한다며 민주주의 흉내를 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토보유세나 재난지원금 등 자신의 여러 공약을 포기하자 해석이 분분하다. 서울신문은 지난 2일 4면에 ‘국토보유세 재난지원금 접은 이재명… 그 뒤엔 여론조사의 힘’이라는 기사에서 “여론조사가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좌우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겨레는 지난 3일 5면에 ‘지킬 약속만 한다던 이재명, 기본소득 공약까지 후퇴 시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