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탄 사람들, 두 다리로 선 누군가, 손에 들린 피켓, 목에 걸린 문장, 몸에 감긴 요구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와 함께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월요일인 지난 28일, 스물다섯 번째 ‘출근길 지하철’에 올랐다.“서울거리의 턱을 없애 주시오. 건너갈 수 없는 횡단보도. 들어갈 수 없는 식당과 화장실. 우리가 살 땅은 어디입니까.” 1984년 9월, 스스로 숨을 거둔 장애인권운동가 김순석 열사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었다.2001년 1월 오이도역, 고령의 장애인 부부가 타고 있
“우리 조직에 성소수자가 없는데 어떻게 성소수자를 배려합니까?”전에 몸담고 있던 곳에서 성평등 캠페인을 하면서 들었던 얘기다. 바로 눈앞에 성소수자들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그 사람의 무지할 자유가 좀 부러웠다. 그러게 말이다. 분명 있는 존재가 왜 눈에 보이지 않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다. 화장실 때문이다.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를 통해서였다. 이들은 외출하는 날 아침부터 웬만하면 물을 마시지 않고 밖에서 커피도 마시
1.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경총 회장·대한상의 회장·무역협회장 등에 전경련 회장까지 포함한 경제단체장들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불러 도시락 회동을 했다. 언론은 이날 회동에 전경련이 참석한 것에 관심을 두고서 문재인 정권에서 대한상의에서 전경련으로 경제단체의 힘이 바뀌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했지만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단지 거기서 당선자와 나눴을 대화에 관심이 있을 뿐인데, 참석했던 경제단체장들은 기업규제 완화 요구를 쏟아냈던 모양이다.이날 윤석열 당선자가 “우리나라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경제를
지난 대선 결과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떤 후보자와 정당을 지지했든 일하는 시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희망한다면, 너무 실망도 낙관도 말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하고 조직하는 활동을 멈추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다.민주화 이후 더 이상 과거 권위주의 시기처럼 통치자 일방의 의지나 명령만으로는 정책집행이 불가능한 사회가 됐다. 진보적 공약을 내세우거나 노동자에게 상대적으로 친화적인 후보자가 선출된다고 해서 불평등이 해소되거나 노동인권이 바로 좋아지지 않았다. 역으로 ‘기업 친화적’인 대통령이 탄생한다 해도 국회
1차 북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무렵인 1994년 군 복무 중이었다. ‘부동시’로 국방의무를 면제받은 윤석열이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근무할 때다. 작전계획에 따르면, 전쟁이 나면 주둔지를 떠나 후방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진지로 이동해 사흘을 버티는 게 우리 중대의 임무였다. 아군이 북상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라나. 중대원들은 사흘을 버틴다는 것을 그 시간 안에 모두 전사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아무튼 당시 나는 우리를 지휘하는 군통수권자가 김영삼 대통령인 줄 알았다. 전쟁이 나면 안 되겠지만 전쟁이 나더라도 그 결정은 김영
평등주의는 노동운동의 핵심 가치였고 지향이었다. 그렇다. 나는 평등주의를 ‘가치이고 지향이다’라는 현재형이 아니라 ‘가치였고 지향이었다’는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아직도 평등주의를 기조로 삼는 정파들, 그리고 아직도 평등주의를 가슴에 담고 있는 많은 활동가를 향한 도발이다. 사실 나의 의도된 도발은 ‘평등주의 노동운동은 끝났다’고 하는 1월3일자 칼럼이었다. 그 주장은 민주노총 안팎의 각종 정파와 활동가에게 난타당해야 했다. 그렇지만 나의 서글픈 예측대로, 지금까지 그 어떤 비판과 반박도 공개적으로 없었다.평등주의가
얼마 전 ‘드라마 제작 스태프가 근로자’라는 말을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해도 되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나에게도 현장 스태프 10명 중 2명만이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현장에서 ‘드라마 제작 스태프가 근로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듣기에만 좋은, 그러나 현실감은 전혀 없는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다.때로는 법이 있는 것과 법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함에 있어 장애물이 많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법에 규정된 권리가 있더
한겨레신문이 지난 11일 20면에 “CJ제일제당, 70년 무노조 경영 깨지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설립 이후 70년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 왔다.한겨레는 이 회사 노동자들이 최근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신고를 하고 노조 집행부를 꾸리고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고 전했다. 노조는 한국노총 산하 식품노련 소속이란다.이재용 부회장이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지만, 이 노조는 신원 노출을 막으려고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들어 조합원을 모집 중이란다. 노조는 카톡방에 “가입자 본인이 가입 여부를
사람들은 미래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현재를 확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는 구체적이라 생각하고, 미래는 추상적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미래가 구체적이고 현재는 추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미래 목표를 세워 놓았지만,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더 많지 않은가.현재를 구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확실한 건 바로 자기의 생각과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사건을 배열하고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그리고 윤석열 후보의 당선 이후 그의 공약과 언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고 운동조직별로 자신들의 구체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활동도 유행처럼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윤석열 당선자 공약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선거공학적으로 짜깁기된 것일 뿐 윤석열 정부의 실제 국정운영안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과거를 떠올려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도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 실제
“아이고, 이런 코로나 시국에 무슨 수련회입니까? 그냥 다음으로 미루지.”상담소를 찾은 지역의 노조간부는 회사와 2022년 단체교섭에 앞서 노조에서 준비하고 있는 간부 수련회에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그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노조 행사가 취소되는 것에 익숙해져 솔직히 다시금 행사에 열정을 쏟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번 간부 수련회는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다 노조가 올해 야심 차게 준비한 행사였다.총회나 대의원대회는 노조의 한 해 활동방향을 결정하고 조합비를 기반으로 하는 예산의 사용을 인정받는 중
엄마는 항상 일했다. 내 기억이 있는 유치원 언저리부터 현재까지 가장 큰 엄마에 대한 기억은 일하는 모습이다. 집에서 식사를 만들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삼 남매 뒤치다꺼리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휴게소에서 판매사원으로, 사무실에서 경리로 일을 했다. 일을 그만두고 우리를 돌보는 동안에도 엄마는 계속 돈을 벌었다. 엄마는 집에서 우리와 함께 볼펜을 조립했다. 우리가 조금 크고 나자 한식조리 자격증을 따고 학교급식 조리 일을 했다. 아빠가 희망퇴직을 하자 돈가스집을 했고 손목이 아파 병원을 들락날락하게 되자 동네에서 슈
최근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두 건의 상담을 했다. 하나는 피해자가 직장내 괴롭힘 조사를 원치 않는데도 사용자가 조사를 강행하려고 하는 사건(사건 ‘가’)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신고는 묵살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인 사건만 처리해 피해자에게 징계를 가한 사건(사건 ‘나’)이다.사건 ‘가’의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 조사를 하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결론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현재 사용자는 직장내 성희롱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피소를 당한 상태여서 이 소송에 유리한 사실관계를 만들어 내거나, 추후 피해자로
1. 지난 주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집무실을 용산 국방부청사로 이전한다고 발표해서 TV 뉴스를 켤 때마다 시끄러웠다. 국민에게 청와대를 내주고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정부부처에 준하는 방대한 대통령 비서실 등을 폐지해 대통령집무실 자체를 없애고서 대통령이 주요 정부부처들이 있는 정부청사에 출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대통령집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인데 거창하게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니 잘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한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나
몇 년 전부터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있으면 글귀 옆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 것이다.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귀가 있는데 펜으로 줄을 치고 싶지는 않고, 고민하다가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은 어느새 책을 읽을 때 필수 준비물이 됐고, 기억하고 싶은 글귀가 있는 페이지에 붙어 있다. 이렇게 내가 읽은 책에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또는 듬성듬성 붙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산 한 권의 책에는 포스트잇이 하나도 붙지 않을 것 같다.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하나도 없어서가 아니라, 이 책의 모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 NBC뉴스와 화상 인터뷰를 하면서 “3차 대전이 이미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2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파멸적인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러시아를 물리적으로 공격해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하거나 국제법을 위반한 나라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세계대전이라는 말을 언급
의외의 선물건강한 아기는 황금 똥을 싼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규칙한 패턴 속에 술까지 마셔 대는 몸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다. 온몸에 몸살 초기 증세가 나타나더니 자가진단 키트에 양성이 떴다. 인근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몸이 따갑고 코가 아픈 증세보다 나를 놀라게 한 신체 변화가 일어났다. 격리가 하루 이틀 늘어나자 스트레스와 술에서 해방된 몸은 색깔이 더욱 선명해지는 황금빛 똥을 내놓았다. 코로나의 선물이다. 지구도 이랬다.저성장기로 뭉그적거리던 자본주의는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자 경제성장을 멈추지
지난 2019년 8월2일 택시 사업장에서 일정 금액의 기준을 정해 수납하거나 납부하는 사납금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개정안(21조1항, 26조2항)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인택시 임금지급의 기초가 되는 간주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안도 의결됐다.(11조의 2).다만 주 40시간 택시월급제를 규정한 택시발전법 11조의 2는 부칙으로 서울지역의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시행하되, 나머지 지역은 공포일부터 5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헝가리, 북쪽은 슬로바키아다.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차로 북쪽으로 달리면 조용한 동유럽 시골 마을이 이어진다. 1시간쯤 달리면 비셰그라드 성이다. 13세기 몽골 침공에 대비해 절벽 위에 지은 요새다. 이후 헝가리 국왕 마차시 1세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인구 2천명도 안 되는 시골이다. 성곽에 올라서면 발아래 조용히 흐르는 도나우강 너머로 슬로바키아의 푸른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다시 강을 따라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에스테르곰이란 좀 더 큰 도시가 나온다. 에스테르곰은 대
청년유니온은 지난 16일 총회와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형식적으로는 본부와 과반이 넘는 지부의 선거 무산에 따른 것이다. 진짜 이유는 그간의 성과와 한계, 운동 노선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새로운 비전 수립과 조직개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지난 12년 청년유니온이 변화한 사회 상황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 왔고, 어떤 성과와 한계의 노정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수많은 조직 중 하나의 이야기나 청년세대에게만 유효한 이야기가 아니다. 향후 ‘사회적 노동조합’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