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지독한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아니,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에는 희생자의 숫자만이라도 오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8년 전과 같은 오보는 없었다. 그날 TV에서 바다에 잠긴 배를 목도했던 순간은 그대로 복제돼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으로 남았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우리는 다시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일상의 안부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있는지’ 물어야 했다. 그대들은 안전한지, 자녀들은 무사한지 물어야 했고, 걱정할 사람들을 위해 S
의료시설은 환자 식별과 관련해 오류의 여지가 거의 없어야 한다. 의료팀이 환자의 병력을 기반으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100% 정확도로 식별돼야 한다. 그런데도 종종 환자 또는 환자기록물이 바뀌어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있다.2006년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2명의 진료기록부가 바뀌어 위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갑상샘 제거 수술을 받고, 갑상샘 환자는 멀쩡한 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 대형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마취 전 환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등의 준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다. 201
“사고 직후 그 설비를 모두 멈출 필요가 있었을까요?”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동료가 증인으로 나온 재판에서 어느 판사가 한 질문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이 질문하는 내내 주눅 든 사람처럼 소극적으로 답변하던 동료 노동자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높아졌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사람이 죽은 곳 아닙니까.”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조사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점검과 필요한 조치가 이행되기 전이었다. 심지어 참혹한 사고 현장이 채 수습되기도 전이었다. 노동자의 몸이 끼여 해당 설비가 멈추자, 회사는 혹시라도 생산에 지장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경영계를 중심으로 개정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중에 하나가 ‘필요한’ 예산, ‘충실히’ 수행 등의 표현이 모호해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이를 분명하게 정해 달라는 요구다. 이를 받아서 정부가 시행령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안전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의문이 들었다. 업종마다 사업장마다 특성이 다 다른데 ‘필요한’ ‘충실히’를 사전적으로 구체화하기는 매우 힘들지 않을까. 설령 정한다 한들 일률적인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아 수용성이 떨
밤샘 노동을 하던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였다. 프레스기로 노동자들의 손가락을 제품과 함께 잘라 가며 수출하던 나라에서는 그랬다. 10대 여공들이 잠을 쫓는 약에 풀어진 눈으로 시다판에 피 섞인 가래를 토하며 옷을 짓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있으나 마나 했던 근로기준법 준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불살라야 했다. 강남 벌판에 쑥쑥 올라가는 아파트들이 늘어갈수록 공사판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노동자들도 늘었고, 부러지고 부서진 노동자들의 뼈로 골조를 세우는 나라였다. 열일곱 소년노동자가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들다 수은
지난주 금요일,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그룹채팅방에서 뜬금없이 메시지가 울렸다. 해당 그룹채팅방의 이름은 ‘이산화탄소 사건대응’이다. 2018년 9월4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누출로 인해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명의 노동자가 중태에 빠진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수원지역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구성됐던 방에 갑작스레 소환된 것이다. 이유인 즉 해당 사고가 벌어진 후 ‘4년1개월’이 훌쩍 지난 이달 7일 경남 창원의 DL모터스에서 이산화탄소로 인해 또다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언론에 보도된
또 하청노동자들이 죽었다.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로 시설관리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과 물류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모두 하청노동자들이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현장을 찾아 사과문을 발표하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청인 현대백화점과 그 경영책임자인 정 회장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조금씩 원청의 의무를 강화해 왔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원청의 의무와 책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그
“오늘날 많은 여성의 고발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 찢어지는 감정이라기보다, 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리적인 소스라침에 가깝다. 그 몸들의 비명으로 온 세계가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그 환멸과 피로에 휘청이는 것.”(목정원 중)잘 참고 버티다가도 어느 순간 고삐를 놓아 버리는 때가 있다. 늘 있던 흔한 회식 자리였다. 예약된 식당 방 안에서의 자리 배치와 선정에 눈치싸움이 치열하던 때, 신발을 벗으며 방을 흘깃 보니 귀신 같은 타이밍 덕에 잘 피해 앉을 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이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를 실시하고 보고받은 경우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여부 점검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위험성 평가 시스템 구축에 대한 건설사들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위험성평가에 관심이 커진 것이다. 최근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위험성평가를 자체 안전보건시스템 내에 구축해 협력사와 연계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형식적 운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사전 재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 사건은 1년에 약 2천200건이다. 그중 1천700건 정도가 노동자나 공단의 승소, 또는 취하 등으로 확정된다. 공단은 행정소송 패소율을 2020년 13.1%, 2021년 12.3.%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공단 스스로 취하한 사건을 포함하지 않은 통계다.2020년 전체 취하사건 913건 중 공단이 패소가 예상돼 취하한 건은 386건, 2021년에는 771건 중 337건이다. 이를 공단 패소사건 각 247건(2020년)·212건(2022년)과 계산하면 패소율은 2020년 33.4%,
법 없이도 살 사람, 선량하기 이를 데 없어 타인과 사회에 어떤 해악도 끼칠 뜻 없이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편으로 법이 있어도 오로지 나만이 중해 힘과 속임수로 빼앗기를 일삼는 사람들도 많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법이 있어도 피해받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시대에 맞게 법을 다듬고 벼려야 하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이들을 국민들의 직접투표로 선출하는 이유고,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이들의 공정과 청렴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은 유권자 14만6천명당 1명 꼴이지만 그중 법조인 출신은 전체 국회의원 3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피해자는 연간 10만명이 넘는다. 이 중 산재 사망자는 2천명이 넘고, 산재 장애인은 3만7천명이 넘는다. 매일 5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매일 100명이 산재로 인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산재로 인한 장애인은 2016년 3만2천914명이었으나, 2020년 3만7천426명으로 크게 증가해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장애인 등록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에 새롭게 등록한 장애인이 8만3천명이었으니 산재 장애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복지부 통계와 산업재해 통계가 시점이나
짧은 추석 연휴가 끝났다. 간만의 명절 연휴가 주말과 겹쳐 더욱 짧게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필자는 연휴 내내 촉각을 곤두세웠다. 연휴 직전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뿐 아니라 해당 소식을 전달받은 많은 이들이 추석을 적지 않은 긴장 상태(?)에서 보냈을 것이다.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은 시행령 개정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할 것인지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 개악의 성격을 띨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윤석
최근 자문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통해 모 회사에서 계획 중인 새로운 안전관리제도의 초안을 살펴본 일이 있었다. ‘안전관리 3OUT 제도’라는 이름의 새로운 안전관리제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안전사고가 발생하거나 안전기준을 위반하는 일이 발생하면 조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의 책임 여부를 판정한다. 여기서 판정된 과실 여부와 정도에 따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감봉·정직·해고에 이르는 징계에 처한다. 추가적으로 징계를 당한 노동자는 인사등급을 하향적용하고 해당자가 속한 부서는 무재해평가에서 감점을 받는다.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학교 조리실은 가열·비가열 작업을 통해 조리가 이뤄지는 장소다. 학교급식법 시행규칙 별표1의 세부기준(3조1항 관련)에는 “조리장의 소음이나 냄새로 인해 학습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39조 보건조치에서는 “근로자들의 소음 등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현재 학교 조리실에서 이를 예방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최근 경상도 지역의 작업환경측정 결과 노출기준을 초과한 학교는 없었으나 80데시벨(dB) 이상의 소음이 측정된 학교가 43개
그동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해 가급적 말을 아껴 왔다. 중대재해 예방의 권한과 책임을 조응시키는 이 법의 취지를 제대로 알리고 현장에 적용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이 땅의 기업들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노동의 현실을 바꾸기보다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완화하는 취지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경영책임자의 의무 명확화를 위한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업)현장 애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법이 시행된 지 고작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노
소음은 인간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동시에 장기간 노출되면 청력 저하와 정신적 문제 등 직접적인 건강상 문제까지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소음에 비교적 관대했던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작업장 소음 규제를 마련하고 소음에 의한 피해를 보상하는 등 최근 들어 소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이에 따라 과거 작업장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원치 않는 고농도의 소음에 장기간 노출돼 청력이 저하된 이른바 소음성 난청 산재신청 건수 역시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5년 1천46건에서
‘시행령 정치(政治)’가 논란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부처 홈페이지 보도자료 공지란을 통해 직접 메시지를 전했다. “다수의 힘으로 헌법상 절차를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킨 입법자들이 ‘(검찰에게) 중요범죄 수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와 속마음’을 가졌지만 정작 법률을 개정하면서 “의도와 속마음조차 관철하지 못하게” 법문을 구성한 것 아니냐고 비웃었다. 그리고 “정부의 기준은 중요범죄를 철저히 수사해서 국민을 범죄피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장관의 설명(연설)은 “서민 괴롭히는 깡패 수사, 마약 밀매 수사, 보이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건설업종은 여전히 사망사고 다발 현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업종에서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전문건설업의 안전보건경영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전문건설업체는 지난해 기준 7만개 정도인데, 업체 간 매출액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안전보건경영 능력 차이 또한 존재한다. 전문건설업이 안전보건경영에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만큼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산업
올여름 폭염에 이어 기록적인 폭우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의 한 단면이라고 이를 이해해야 할까. 모두가 한 번쯤은 얼핏 들어봤을 울리히 벡의 라는 책이 떠올랐다. 1986년에 출간된 책에서 그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다. 그는 저서에서 앞으로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조망하며, 위험이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평준화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반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