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윤석열 정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발표했다. 각 분야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노동’이라는 글자를 각종 문구에서 삭제해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간 노동을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해 왔지만, 이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여전히 한참 부족하지만 한 걸음의 진전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 정부는 한 걸음을 위한 노력마저 무(無)로 만들기 위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변경의 문제가 아니다. 형식을 넘어서는 사회구조적 본질에
1. 윤석열 정부와 집권 국민의힘은 지난 18일 ‘주 52시간제’를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다양하게 개편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 관련 입법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기로 했다.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패널’ 100명을 참석시킨 상태에서 열린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래세대에게 자기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 공공하기 위해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와 같이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혁 추진 방향에 관해서는 12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회에서 권고문 형식으로 발표한 바 있었는데,
산업재해보상제도는 무과실 책임에 입각한다. 사용자에게 과실이 없어도 재해가 발생했으면 보상한다. 질병의 업무관련성은 재해근로자의 주관적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확립된 법리로, 기초 질환이 있었더라도 업무로 악화됐다면 업무상 재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이러한 법리에 의한다면 정신질환의 경우 원래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 쉽게 산업재해가 승인돼야 할 것이다. 원래 예민하거나 관련 상병이 있었던 사람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있었는데 업무상 스트레스가 발생해 상병이 발병하거나 악화됐다면, 그 스트레스가 보통 사람
노동자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 손해배상 청구 등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 촉구에 재계는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이라며 경악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수십억·수백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야만 보장된다는 사용자의 그 ‘재산권’이 도대체 무엇이기에.첫째, 헌법 규정부터 살펴보자. 우리 헌법에는 ‘한계’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등장한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23조1항에서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많은 기본권 중에서 그 ‘한계’까지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자기 집 앞에서 생방송한 더탐사 기자를 정치 깡패에 비유하자 옆지기가 한 말이다.한 장관은 지난달 28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과거에는 이정재, 임화수, 용팔이 같은 정치 깡패들이 정치인들이 하기 어려운 불법들을 대행했다”며 “지금은 더탐사 같은 곳이 정치 깡패들이 했던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한국일보 11월29일 6면 “한동훈 ‘더탐사, 정치 깡패처럼 민주당과 협업’”)들은 건 있어서 ‘정치 깡패’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 단어가 나올 맥락은 아니다. 한 장관
회사를 옮겼다. 이전 회사에 비해 출입하는 공장이 많다. 한 달 동안 대공장 두 곳을 출입했다. 전 직장까지 합치면 세 곳을 돈 셈이다. 현장 일은 어디든 비슷했다. 하지만 안전관리 영역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공장마다 안전관리 수준이 극과 극이었기 때문이다. 전 직장은 안전관리가 강화되는 추세의 공장이었고, 이번에 일하러 들어간 공장 중 한 곳은 국내 최상의 안전관리 수준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곳, A공장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안전관리 수준이 뒤떨어졌다.A공장은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
화물연대 파업은 끝났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의 공정거래법 위반을 계속 조사하겠다고 한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 단체가 소속 회원의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사업자끼리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합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사업자끼리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파업 참여 독려를 ‘소속 회원의 사업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로 규정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고 싶어서 억지로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려나 본데, 화물연대는 사업자단체가 아니라 노동조합
부천의 어느 화장품 제조업체와 식당에서 일하는 60대 여성 강아무개씨와 정아무개씨는 탄력적으로 일한다. 50명 미만으로 소규모 회사인지라 사장님은 필요할 때마다 이들을 불렀다가 일이 한가하면 쉬게 했다. 1주에 2~3일 정도를 꾸준히 일했지만, 그들이 근무일을 기록한 탁상 달력에는 일당을 받지 못해 휑한 비번일이 눈에 띄었다. 어느 동요의 한 구절처럼 사장님은 ‘퐁당퐁당’ ‘무급휴가’의 돌을 던졌다.이 회사의 사장님들은 이들에게 수년간 일을 시키고도 퇴직금을 안 줬다. 특히나 제조업이나 서비스 자영업 사업장에서는 기간의 정함이 없이
지난 9일 오전 12시, 적막한 사무실에 타자 소리만 가득하다.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두 번째, 6월에 있었던 총파업부터 하면 네 번째 영장실질심사다. 사건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파업 참여 권유 및 파업 기간 운송 자제 목적 집회에 참석했다가 상차지에 출입하는 차량의 운전자에게 파업 참여 권유를 하거나 차량 앞을 가로막았다는 혐의다. 피의자인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뭐라도 해 보고 체포됐다면 억울하진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같은 지역에서 운송을 해서 서로 안면이 있는 처지에, 집회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상차를 기다려달라는
노동의 미래를 특징 짓는 ‘메가 트렌드’ 중 하나는 디지털 상호작용을 통한 생산과 소비, 협업 및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경제의 성장을 들 수 있다. 빠른 성장세의 배경에는 전일제 노동이 불가능한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이나 가족돌봄을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 그리고 성별·연령·교육수준 등 오프라인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유급노동 참여기회를 제공한다는 장점 등이 자리한다. 또한 기술발전으로 인해 플랫폼이 기존 일자리에 쉽고 빠르게 접목되는 플랫폼화가 수월해지고, 알고리즘에 의
1. “주 12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 단위, ‘월·분기’ 단위, ‘월·분기·반기·연간’ 단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근로시간 제도 적용 제외를 검토한다.” 12일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7일 ‘당·정 정책 현안 간담회 안건’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당정은 이 같은 노동정책안 추진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근로시간제도에 관해서는 위와 같은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고 고소득 전문직의 예외를 인정하는 외에도 당정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사무실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사업장에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하러 갔다. 해당 사업장은 ‘남초’에 경직된 위계 문화를 가진 조직이었다. 교육 준비를 위해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상대방이 무심코 “하급자가 하는 을질도 있고” 하는 말을 들었다. 놀라움과 함께 이게 뭔가 싶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그 사업장에서 몇 달 전 신입 구성원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더라도 교육 대상과 사업장 상황에 맞춰 내용을 구성해야 하기에, 상하급자가 섞여
지난 10일은 노동자 김용균의 4주기였다. 추모주간 마지막 날 보신각에서 추모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날씨가 흐린 탓도 있었지만, 전날 화물연대의 파업 철회 때문인지 추모집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추위와 패배감을 뚫고 모였다. 모여서 말하고 들었다.김용균 재판 대리인 박다혜 변호사는 “어떤 죽음을 지켜보았고, 또 다른 죽음을 기억하는, 죽음과 죽음 사이의 분노와 슬픔까지 함께 경험하는 우리들은 동시대인이다. 반복되는 죽음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도의 기술적 조치가 필요해서가 아
지난 9일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됐다. 그 과정은 파쇼권력이 노동자를 어떻게 짓밟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전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파업 대응 관련 관계장관회의에서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을 북한의 핵 위협에 비유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화물연대를 조폭으로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는 노동계를 제 세상인 양 활개 치는 조폭들을 확실하게 정리해, 노사관계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상식적으로 규율되는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 재난’으로 규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굉장한 장악력을 보여준 집단우리는 가족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조직 생활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많고 영향력이 큰 조직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집단은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조직은 800만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됐다. 기업이 바로 그 조직이다.산업을 장악한 것은 누구인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사회를 대체할 기세로 성장한 산업은 기업으로 이뤄지고 그것을 장악한 것은 기업가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민의 압도적 다수는 기업
자본은 늘 상상 이상이다. 고용노동부가 한민족 동포가 국내에 방문취업하는 H-2 비자를 대형 숙박업소(4~5성급 호텔과 콘도)에도 허용키로 하자, 발 빠른 자본은 ‘조선족 캐디’부터 대거 도입할 생각이다.해외동포는 우리와 언어·역사·문화를 공유하기에 노동시장 적응력이 높아 그동안 여러 업종이 취업 확대를 요구해 왔다. 자본 입장에선 부려 먹기 편해서다.H-2 비자는 중국과 구소련 지역 6개 나라 동포들이 대상이다. 주로 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다. 지금 한창 전쟁의 포화 속에 갇힌 우크라이나 동포도 포함돼 있다. 지금까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청년이 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2년간 일을 하다 더 나은 꿈을 꾸기 위해 도시의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다니는 도시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고, 집에서 보태주는 생활비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현실적인 경제 문제 등으로 중간에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학교를 그만둔 후 취업을 해 보고자 노력했지만 변변치 않은 일자리에 몇 개월 근속을 하지 못하고 이직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청년복지 정책, 청년자활사업,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의 정
눈이 내려왔다. 대설을 하루 앞둔 이른 아침.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면 왼편으로는 노동권익센터가, 오른편으로는 충남도청이 눈에 들어온다. 도청 너머 펼쳐진 용봉산과 수암산의 능선에도 희끗한 눈의 흔적들이 자리한다.눈이 내려온다. 공원을 가로질러 빠른 걸음으로 5분. 어깨에, 외투와 머리칼에 닿아 오는 굵은 눈송이가 출근길 산란한 마음을 다독이는 듯도 했다.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돌아선 골목에서, 크레인에 올라 건물 외벽 유리창을 정비하는 노동자들을 마주한다. 5분 남짓 짧은 출근길, 순진한 낭만에서 이내 깨어난다. 이른 아침, 시린
축구도, 야구도, 인생도, 투쟁도 그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식회사 청산의 첫 단계는 주주총회의 해산결의다(상법 517조). 청산절차 진행 중, 주주들은 언제든 ‘회사의 계속’ 결의를 할 수 있다(상법 519조). 주주들로 하여금 스스로 손해를 줄이기 위해 계속 결의를 하도록 만들면 된다. 그러면 회사는 완벽히 부활한다.한국와이퍼라는 회사가 있다. 매출 규모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부품 회사인 일본 덴소(DENSO)의 한국 내 자회사다. 덴소는 올해 기준 세계 35개 국가와 지역에서 총 198
1. “정유·철강 등 운송 차질이 발생한 업종에 대해서 업무개시명령 발동 준비를 마쳤다.”4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재 대책회의를 통해서 이렇게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파업에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시멘트 업종에 더해 정유·철강 등으로 확대 발동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파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정치파업으로 봐 불법파업으로 규정짓겠다는 것이다. 어제 오후 이런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