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목구멍에 찬 말을 하는데, 말 길이 자주 꽉 막혀 저들은 그저 물처럼 여기저기 흐른다. 뭉치고 갈라지고 스며들어 떠돌던 사람들이 어디든 찾아가 집을 짓는다. 하늘엔 까치집, 땅에는 비닐 집을, 천장 있어 다행인 곳엔 발포 매트 집 짓고 머문다. 철창 집도 그 목록에 있다. 그게 다 말이다. 어찌어찌 찾은 확성기다. 곧 무너질 것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줄을 알면서도 저들은 집 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모래 다져 세운 집이 밀려드는 파도에 어느새 흔적 없다. 철썩
길에서 큰 목소리 내려니 마이크와 스피커, 또 전기가 필요했다. 기자회견 청한 사람들은 발전기를 준비했다. 기름 태우는 내연기관이 달린 것이다. 시동 줄을 주욱 당기면 될 텐데, 누군가 여러 번을 실패하고 다른 이가 나섰다. 부르릉 탈탈탈 한 방에 돌았다. 기름밥 좀 먹은 사람의 솜씨다. 너무 빨리 당겨서도, 천천히 당겨서도 안 된다고, 언젠가 벌초 나선 길에 예초기 만지던 아빠가 알려줬다. 꼭 한 번 내 손으로 시동 걸어 풀을 깎아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돌아오질 않았다. 막내 등에 기름 묻을까 봐 그랬다고 아빠가 나중에 말했다.
학교 다닐 적, 밥때가 되면 친구들과 주욱 둘러앉아 한바탕 요란스럽게 ‘밥가’를 부르고 숟가락을 들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김지하의 시 일부에 음을 붙이고 후렴구를 보탠 노래였다. 종종 햄 반찬 같은 것 때문에 불편한 긴장이 흐른 적도 있긴 했지만, 나눠 먹는 밥이 참 맛있다는 걸 서로 잘 알았다.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러나 콩자반이 늘 남았다. 옛날 어느 공장 식당에서 밥 지어 밥벌이했던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싸 준 도시락엔 김치볶음, 감자채볶음, 미역줄기볶음, 어쩌다 한 번
재수 끝에 운전면허를 따낸 어떤 청춘은 당장 차를 끌고 여기저기 달려 볼 생각에 설렌다. 늦은 밤, 탁 트인 자유로를 달리며 평소 꼼꼼하게 선곡해 둔 드라이브 음악을 튼다. 창을 내리고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어느 주말이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던 한적한 동네를 찾아가 유유자적 거닌다. 동해안으로 달려 볼까. 저 아래 남쪽 마을은 또 어떨지. 대형마트 장 보는 것도 이제 문제없다. 그러나 초보 운전자는 오늘 도심 복잡한 도로에 나가 거친 야생 속 초식동물의 삶을 겪고야 만다. 온통 바쁜 사람들뿐인 그 도로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건 눈을 맞추는 일이다. 틈틈이 고개 끄덕이는 일이다. 그리고 핵심을 짚어 받아 적는 일이다. 거기 중요한 말에는 밑줄 쫙, 화살표 날려 덧붙임글을 단다. 동그라미까지 그려 감싸고 나면 눈에 확 든다. 다음 대화를 이어 갈 재료가 된다. 혹시 모를 오해를 줄이기도 한다. 적어도 성의표시 정도의 역할을 한다. 새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갔다. 노조위원장이 먼저 말했고 장관이 종종 눈 맞춰 가며 받아 적었다. 거기 메모엔 강한 유감과 적지 않은 우려가 담겼다. 또 한편 미리 준비한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니, 산 좋고 물 좋은 곳 여기저기가 사람들로 붐빈다. 마스크 벗은 아이들이 까르르 물 빠진 바닷가 모래밭을 종일 누빈다. 푹푹 빠지는 뻘밭 속 돌멩이를 들춰 게를 잡느라 해지는 줄, 물 드는 줄을 모른다. 꼬르륵 배고픈 건 잘도 알아 짹짹거리는 통에 숯불구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아빠는 운다. 오랜만에 나선 길, 허투루 보낼 시간이라곤 없어 밤 해변에 축포를 쏴 올린다. 인터넷 최저가 검색해 구입한 폭죽은 딱 돈값을 했다. 앙칼진 소리만 요란했지, 기대했던 불꽃은 너른 하늘을 수놓기에 턱없이 소박했다. 거기 별이
마스크 벗고는 처음 만난다며 마이크 잡은 사회자가 거기 모인 스태프들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햇볕도 바람도 좋은 날이었다. 거리가 반짝거렸고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이제 야외에서 마스크 벗고 설 자유를 즐겼다. 말과 표정이 밝았다. 기자회견은 활기찼고 순조로워 보였다. 얼굴을 다 덮는 마스크 쓴 사람들 얘기가 다만 그렇지 않았다. 부당한 해고와 갑질을 증언하던 그들은 자주 울먹거렸다. 무너지기 직전이었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주고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닌 옆자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였고, 프리랜서 방송작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 소속 배달노동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배민 자체 내비게이션의 실거리 오류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한 뒤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배달의민족이 자체 개발한 지도 프로그램이 최종 거리만 공개해 요금 측정 근거를 알 수 없고, 배달에 소요되는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측정돼 거리와 요금 깎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고통보를 받은 비정규 노동자가 길에 섰다. 재판만 10년째, 해고는 3번째, 이게 법이냐고 종이에 적어 물었다. 이미 아득한 시간을 견뎠다. 온갖 회유와 협박, 시간 끌기에 지쳐 떨어진 동료가 적지 않았다. 흔한 일이다. 불법파견 판결에, 부당해고 판정에도 묵묵부답, 꿈쩍 않는 회사는 큰돈 들여 다툼을 이어 간다. 꼼수 써 가며 피해 간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목구멍 밥이 급한 사람들이다. 이러는 법이 어딨느냐고 길에서 기고 굶고 소리쳐 보는데, 메아리가 없다. 깜깜한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길에서 오래 싸운 사람들이 다들 말한
기억은 참 힘이 세지. 온라인 추모관에 누군가 남긴 문장이 노란색 현수막으로 걸렸다. 일찍 피고 진 벚꽃잎 바닥에 뒹구는 길 따라 사람들이 어김없이 모였다. 참담한 기억을 끄집어내 곱씹었다. 여태 모르는 진실을 다시 물었다. 울었다. 눈물은 참 힘이 세지. 온몸으로 꾹꾹 눌러 참아 봐도 기어코 꺽꺽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다. 쭈글쭈글 주름 많은 손이 또 힘이 세지. 제 눈물 싹 훔치고 옆자리 우는 사람 어깨를 도닥이고, 등을 쓰다듬고,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다 보면 막 쏟아지던 눈물도 금새 그치는 것이다. 퉁퉁 부은 눈에 웃음 번지는
일터의 정년. 공로패며 묵직한 금붙이, 또 동료·가족의 박수와 꽃다발 따위를 떠올린다. 이제는 좀 쉬라는 자식들 잔소리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니 한 귀로 흘린다. 단기 계약직 일자리 소식에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아직은 있구나 싶어 들뜬다. 종종 어깨 아파 팔 올리기가 쉽지 않았고, 시큰거리는 무릎 탓에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살지만, 아직 어디 크게 망가지지는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긴다. 일 안 하면 좀이 쑤신다고도 너스레 떤다. 일하지 않는 날을 상상할 수 없다. 평생을 그래 왔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많이들 그렇다. 길 위에서 정년을
꽃 피는 계절이라지만 지금 활짝 핀 것들은 다 온실 속에서 키운 것일 테다. 서울 청계천 전태일동상 뒤편 산책길에 산수유나무 정도가 수줍게 노랗더라. 가끔 볕 좋은 곳이면 성질 급한 개나리가 펑펑 꽃망울을 틔우기도 했던데, 드물다. 시청 앞이며 어느 광장 둘레 화분에 잘 가꾼 꽃들도 사람 손을 탄 것이다. 실은 보도블록 틈에 뿌리내린 이름 모를 잡초만이 초록 잎 삐죽삐죽 내밀 때다. 지금 예쁜 꽃들은 노랗고 까만 비닐봉지에 있다. 할매는 사람 북적여 활기찬 동대문 꽃시장에 들러 노란 꽃 화분 하나 사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서울 퇴계로변 번듯한 건물 외벽엔 그림이 죽 걸려 있어, 나 품격 있는 호텔이요 한다. 어느 바닷가 풍경으로 보이는 그림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거기 부딪혀 포말 날리는 바닷물과 흰 구름이며 파란 하늘이 담겼다. 또 그 앞 남산자락 소나무와 인도에 서성거리던 파란 조끼 사람들이 유리창에 비쳐 그림에 섞였다. 먼 길 함께 걸어온 사람들은 목욕탕 낮은 의자에 앉아 쉬며 아직 따뜻한 쑥 빛 네모난 설기로 허기를 달랬다. 또 한 번 내일의 행진을 기약했다. 길에 나서 오래 버틴 사람들은 잊히는 게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거리 높은 건물 외벽에 철 따라 시구절이 나붙는다. 된바람 송곳처럼 파고들던 겨울엔 온기를, 땡볕 내리쬐던 여름엔 시원함을 전한다. 봄이라고 바꾼다. 줄 탄 사람들의 일이다. 거기 적힌 말엔 그늘이 없다. 겨우내 추웠던 사람들이 문득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위로 삼을 만한 글이다. 일터에서 집에서 또 어디서 이리저리 부딪혀 닳고 지친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른다. 거기에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들 황사와 미세먼지의 괴로움에 대해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뭐든 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 철 따라 쏟아진 온갖 약속은 달콤하
길에 앉아 오래 버틴 사람들이 핫팩 꼭 쥔 손 들어 구호를 여러 번 외쳤다. 수없이 했던 일이니 군 동작 없이 간결했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마냥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틈틈이 스마트폰 들어 뉴스를 살폈고 단톡방 오가는 소식을 확인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교문을 뛰어 들어가는 짧은 영상을 그 틈에 슬쩍 또 봤다. 집에 간다. 꼬질꼬질 낡은 침낭을 손에 들고 빵빵한 배낭을 등에 맸다. 조끼는 벗지 않았다. 그간 어디서든 제일 먼저 올려 매어 둔 노조 깃발을 갠다. 그거 지키느라 애쓴 거라고, 보고대회 앞자리 선
한자 학습 만화책을 즐겨 보던 딸아이가 어느 날 내게 손바닥을 쭉 뻗으며 ‘바람 풍!’을 외쳤다. 엄청난 강풍에 떠밀리듯 나는 뒷걸음질 치며 벽에 부딪히고 만다. 어릴 적 자주 써먹던 장풍으로 반격에 나서보지만 매번 나가떨어지는 건 나였다. 친밀한 몸놀이를 오래도록 함께하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언젠가 한겨울 지리산에 올라 정상으로 향하던 길에 바람이 매서웠다. 수평으로 날아드는 눈발이 뺨을 아프게 때렸고 귀와 손끝이 아렸다. 한발 앞으로 내딛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흔들흔들 된바람을 헤치고 오른 정상에서 본 아침 해가 더할
까만색 롱패딩 차림 누나가 노란색 롱패딩 입은 엄마를 만나 와락 껴안고 인사했다. 딸의 휠체어를 밀던 엄마를 웃으며 반겼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쪽에 섰던 수염 거친 아빠 얼굴에도 잠깐 웃음기 돌았다. 아버지 영정을 든 아들도 환한 얼굴로 모두와 인사했다. 산재와 참사의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들은 길에서 친했다. 무참한 시간, 서로 곁을 지켜 준 사이다. 같이 아팠다. 길에 설 일이 여태 남아 한데 모여 피켓을 높이 든다. 벌을 선다. 거기 찾은 대선후보 동선 따라, 겹겹이 선 카메라 화각에 맞춰 부지런히 피켓을 움직였다. 더는 사람
경기도 양주 가마골을 지나는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는 자주 구불구불 산을 넘는다. 그늘이면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였다. 검은 도로엔 윤기가 흘렀다. 여기저기 빙판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많았다. 아랑곳 않고 차들은 달렸다. 주류 상자 가득 싣고 오르막 커브길을 오르던 트럭이 소주며 맥주병을 와르르 길에 쏟고 나서야 속도를 줄여 멈췄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피해 상하행 차들이 엉켜 체증이 지독했다. 안전운행을 당부하거나, 다짐하는 스티커가 사고 트럭 짐칸에도 붙어 있었다. 재 너머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노인보호, 어린이 보호 안내
선거철, 대선후보 사무소 앞이 제 사정과 요구를 전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순서 기다려 줄을 선다. 발언은 짧게 해 달라는 사회자의 간곡한 부탁이 매번 무색하다. 할 말이 펑펑 함박눈처럼 날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마이크가 나왔다 안 나왔다 또 말썽이다. 원인도 모르는데, 고쳐보겠다고 허둥대다 보면 또 한참이다. 지난밤, 애써 고민하고 준비한 상징의식도 뺄 수 없다. 점심시간 그 좁은 길을 지나는 차량은 또 어찌나 많은지, 기다릴 일도 많다. 가만히 오래 선 사람들 정수리와 어깨와 모자챙에 눈이 쌓여 간다. 눈사람이 된다. 순
날 추워도 해 드는 곳이면 살 만하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늘 속에 가만 앉아 있는 게 뼛속 깊이 시린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아 누구나가 겨울이면 해바라기가 된다. 그러나 거기 빽빽하게 높은 빌딩숲 사이로 해 들 일이 적었다. 대개 사람들은 그늘에서 추웠다. 40제곱센티미터쯤 되는 은박돗자리에 앉아 핫팩을 비비고 손에 쥐고 몸에 품고 버틴다. 남극의 황제펭귄들처럼 꼭 붙어 견딜 수도 없는 시절이다. 추운 날에도 택배 나르는 사람들 옷차림이 가벼운 건 땀 때문이다. 겨울 산에 오르거나, 몸을 바삐 놀려 일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