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던 날. 잔뜩 껴입은 사람들이 법정 문을 나서는데, 그 표정을 읽느라 사진기자들이 바빴다. 유독 눈 붉은 사람이 있어 찰칵. 아차, 그는 배 짓는 사람이다. 남의 일에 울었다. 구석에 비켜서서 슬쩍 눈물 훔치는 사람도 보여 찰칵. 그가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다. 13년 오랜 기다림 끝에 울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헌법 27조3항은 말한다. 믿는 사람이 없다. 그동안 죽어 간 사람이 많다. 국가 손해배상액 30억원이라고 적은 종이를 잘게 찢어 하늘로 뿌리고 나서야 그들은 웃었다. 여러 번 부둥켜안았다. 어깨 겯고 투쟁
바퀴 굴려 밥 버는 일이 굴레다. 한 푼이 아쉬운 게 부자 아닌 사람들의 숙명이니 그건 쉬이 멈출 수도 없는 것이었다. 차곡차곡 졸음을 번다. 필연 사고가 잦다. 화물차의 졸음운전 때문이었다고, 고속도로 위 수없는 사고의 원인을 진작에 규명했지만, 대책을 세우는 일에는 주춤거리는 동안 사고가 멈추지 않는다.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니 참사로 여긴다. 먹는 일을 멈출 수도 없어 바퀴가 멈추질 않는다. 돌고 돈다. 밤새워 돈다. 갈 길이 멀고 멀다. 그러니 안전이 멀고 멀다. 한 날 화물차들이 줄줄이 섰다. 이들
겨울 앞 새로 꺼낸 두꺼운 솜이불 두 채를 빨아야 했다. 작은 집 살림에 욱여넣은 세탁기로는 어림도 없어 동네 빨래방을 이용했는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탈수했는데도 물 잔뜩 머금은 이불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팔이 뻐근했다. 빨랫줄에 널기도 쉽지 않았다. 물이 참 무겁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비 오던 주말 서울 태평로에서 떠오르지 않던 대형 현수막이 떠올랐다. ‘노동개악 저지’ 구호 담은 그것은 빗물 잔뜩 머금어 무거웠던지, 커다란 풍선 네 개로도 꼼짝을 안 했다.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끝내 높이 솟지 못한 채 거기 모인 사람
한때 온갖 초록빛 작물로 발 디딜 틈 없던 저기 밭이 휑하다. 미처 거두지 못한 무, 배추 얼마간이 남았다. 새로 심은 어린 마늘과 양파가 밭고랑 한쪽을 채웠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마당에서 노랗고 붉게 피어 흐드러진 온갖 꽃나무들은 진작에 비닐하우스 안 특별한 온실로 들어갔다. 겨울 앞이다. 주위 많은 것들이 색을 잃어 간다. 아빠 팔순을 맞아서 모였으니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공들여 일군 그 밭에 늙은 부부를 위한 작은 벤치를 가져다 뒀다. 풍산개 복슬이가 모여든 사람들을 반긴다. 찰칵, 화목이 꽉 들어찬 그 사진 속 사람들은
나뭇잎 하나둘 노랗고 붉어 어디든 가을은 참 예쁘다. 맑은 볕 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보고 있자면 속에서 들끓던 온갖 미운 감정도 바스락 부스러지는 모양이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그 길을 걷고 싶어지는 것이다. 잘 맞는 편한 신발 신고 어디든 길을 나서고픈 마음이 샘솟는 것이다. 가을은 참 예쁘다. 주야간 쉼 없이 돌아가는 빵 공장 앞길에도, 서울 강남땅 어느 높다란 본사 빌딩 앞 거리에도 틀림없이 가을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찾아온다. 시퍼렇게 맑은 하늘 먼 곳을 살피던 사람들 눈이 시큰거린다. 질끈 감은 눈꼬리가 젖
국정감사 시작하던 날, 저기 자동차 와이퍼 만드는 노동자가 푸른 수의에 가면 쓰고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정문 앞에 앉았다. 목소리 내내 높였다. 그 앞 지나는 국회의원들이, 또 기자가 보고 한 번 보고 묻고 찍기를 바랐다. 바람에 그쳤다. 애써 준비한 보람이 적었다. 눈에 띄기를, 말이 돌기를 바라는 일이 대개 그렇다. 지나던 카메라를 무척이나 반긴 이유다. 저 가면의 주인공은 인근 식당에서 국수 한 젓가락을 뜨던 참이었다. 전화받고 한달음에 달려 왔다. 노동부 건물을 무대 삼아 상황극을 선보였다. 외국자본의 먹튀 행각을 꼬집었다
언젠가 바람 많이 부는 선착장 앞에서 함께한 벗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얇은 티셔츠가 몸에 딱 붙어 배 불룩 볼품없는 내 몸매가 사진 속에서 적나라했다. 세상 환하게 웃던 표정이, 또 엉거주춤 우스꽝스러운 포즈까지 완벽한 이른바 굴욕 사진이었다. 나도 벗들도 그 사진을 보며 빵 터져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진 찍힐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난다. 표정과 옷매무새를 자꾸 신경 쓰게 된다. 망가진 제 모습이 사진에 담기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여름철 땀 범벅에 얼굴빛 벌건 주변 사람 모습이나 화난 표정, 넘어지
이렇게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목구멍에 찬 말을 하는데, 말 길이 자주 꽉 막혀 저들은 그저 물처럼 여기저기 흐른다. 뭉치고 갈라지고 스며들어 떠돌던 사람들이 어디든 찾아가 집을 짓는다. 하늘엔 까치집, 땅에는 비닐 집을, 천장 있어 다행인 곳엔 발포 매트 집 짓고 머문다. 철창 집도 그 목록에 있다. 그게 다 말이다. 어찌어찌 찾은 확성기다. 곧 무너질 것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줄을 알면서도 저들은 집 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모래 다져 세운 집이 밀려드는 파도에 어느새 흔적 없다. 철썩
빵 굽던 사람과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한여름 지글지글 끓던 아스팔트에 철퍼덕 붙어 몸을 굽는다. 벌겋게 잘 익은 얼굴에서 떨군 땀방울이 그들 느릿한 오체투지 행진의 흔적을 한강대로 불판에 잠깐씩 남기곤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흐릿했다. 그 길에 사람들이 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제빵사 임종린이 다 엎어진 길에 혼자 삐죽 일어나서는 잠깐 웃었다. 내내 반 박자가 빨랐다. 전에도 그는 삐죽 먼저 일어나 밥을 오래 굶었다. 험한 길이다. 교차로 건너 잠시 쉬어 간다. 앉고 눕고 기대어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쉰다. 그들 곁에 딱
한여름 길에 모여 앉고 선 사람들은 바람이 좀 부는 걸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푹푹 찌던 날 저녁 퇴근시간 무렵이었는데, 해는 기울어도 땅이 식지 않았다. 땀이 줄줄 흘렀다. 서울 세종대로변 서울시의회 앞마당 컨테이너 하나 크기 세월호 기억공간 앞이다. 열기 탓인지, 넘어가며 누렇고 붉던 햇볕 때문인지 얼굴 벌겋게 물든 사람들이 목청을 가다듬고 나란히 서서 노래했다. 서울 어느 마을 어린이합창단이, 어쩌다 뭉친 노래모임 사람들이, 또 416합창단이 차례로 단상 없는 무대에 섰다. ‘아름다운 바람’이며 ‘보고 싶다’ ‘약속’ 처럼 제목
해가 저물고 낮 동안 달궈졌던 땅이 식었다. 바람 방향이 바뀔 때다. 그러나 거제조선소 미처 식지 않은 철판 위에 한 사내가 웅크린 채 꿈적을 안 했다. 사태의 향방을 알 길 없는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큰 배가 머문 잔잔한 바닷물을 오래 살폈다. 철퍼덕 앉아 다 식은 찐 감자를 나눴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워 그라인딩 작업 소리를 듣다간 혀를 찼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수십년 롤러 질에 휜 손가락이, 그라인더에 패인 흉터 많은 손이 거기선 흔했다. 옆 블록에 올라 맞불 농성하던 정규직이 내려왔다. 불법파업 중단을 외치느라
칠월, 치솟는 게 기온이라 사람들 얼굴에 땀이 솟는다. 줄줄 흐른다. 어느 놀이공원 물놀이 기구 아마존익스프레스라도 탄 것처럼 다 젖는다. 습도는 또 왜 그리 높은지 습식 사우나에 손님이 적다. 문 닫은 목욕탕 현관 앞에 대출상품 명함이 쌓인다.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하는 아이들 원성이 높아 나섰는데, 햇볕은 쨍쨍 길바닥은 절절, 부글부글 끓는 게 그 바닥만은 아니라 언성이 종종 높다. 쏴아 소리 내며 치솟는 분수에 아이들 함성이 따라 높았다. 그 순간 더없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물가에 선 어른들 눈 사이 주름이 펴질 줄을 모른다.
길에서 큰 목소리 내려니 마이크와 스피커, 또 전기가 필요했다. 기자회견 청한 사람들은 발전기를 준비했다. 기름 태우는 내연기관이 달린 것이다. 시동 줄을 주욱 당기면 될 텐데, 누군가 여러 번을 실패하고 다른 이가 나섰다. 부르릉 탈탈탈 한 방에 돌았다. 기름밥 좀 먹은 사람의 솜씨다. 너무 빨리 당겨서도, 천천히 당겨서도 안 된다고, 언젠가 벌초 나선 길에 예초기 만지던 아빠가 알려줬다. 꼭 한 번 내 손으로 시동 걸어 풀을 깎아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돌아오질 않았다. 막내 등에 기름 묻을까 봐 그랬다고 아빠가 나중에 말했다.
학교 다닐 적, 밥때가 되면 친구들과 주욱 둘러앉아 한바탕 요란스럽게 ‘밥가’를 부르고 숟가락을 들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김지하의 시 일부에 음을 붙이고 후렴구를 보탠 노래였다. 종종 햄 반찬 같은 것 때문에 불편한 긴장이 흐른 적도 있긴 했지만, 나눠 먹는 밥이 참 맛있다는 걸 서로 잘 알았다.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러나 콩자반이 늘 남았다. 옛날 어느 공장 식당에서 밥 지어 밥벌이했던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싸 준 도시락엔 김치볶음, 감자채볶음, 미역줄기볶음, 어쩌다 한 번
재수 끝에 운전면허를 따낸 어떤 청춘은 당장 차를 끌고 여기저기 달려 볼 생각에 설렌다. 늦은 밤, 탁 트인 자유로를 달리며 평소 꼼꼼하게 선곡해 둔 드라이브 음악을 튼다. 창을 내리고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어느 주말이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던 한적한 동네를 찾아가 유유자적 거닌다. 동해안으로 달려 볼까. 저 아래 남쪽 마을은 또 어떨지. 대형마트 장 보는 것도 이제 문제없다. 그러나 초보 운전자는 오늘 도심 복잡한 도로에 나가 거친 야생 속 초식동물의 삶을 겪고야 만다. 온통 바쁜 사람들뿐인 그 도로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건 눈을 맞추는 일이다. 틈틈이 고개 끄덕이는 일이다. 그리고 핵심을 짚어 받아 적는 일이다. 거기 중요한 말에는 밑줄 쫙, 화살표 날려 덧붙임글을 단다. 동그라미까지 그려 감싸고 나면 눈에 확 든다. 다음 대화를 이어 갈 재료가 된다. 혹시 모를 오해를 줄이기도 한다. 적어도 성의표시 정도의 역할을 한다. 새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갔다. 노조위원장이 먼저 말했고 장관이 종종 눈 맞춰 가며 받아 적었다. 거기 메모엔 강한 유감과 적지 않은 우려가 담겼다. 또 한편 미리 준비한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니, 산 좋고 물 좋은 곳 여기저기가 사람들로 붐빈다. 마스크 벗은 아이들이 까르르 물 빠진 바닷가 모래밭을 종일 누빈다. 푹푹 빠지는 뻘밭 속 돌멩이를 들춰 게를 잡느라 해지는 줄, 물 드는 줄을 모른다. 꼬르륵 배고픈 건 잘도 알아 짹짹거리는 통에 숯불구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아빠는 운다. 오랜만에 나선 길, 허투루 보낼 시간이라곤 없어 밤 해변에 축포를 쏴 올린다. 인터넷 최저가 검색해 구입한 폭죽은 딱 돈값을 했다. 앙칼진 소리만 요란했지, 기대했던 불꽃은 너른 하늘을 수놓기에 턱없이 소박했다. 거기 별이
마스크 벗고는 처음 만난다며 마이크 잡은 사회자가 거기 모인 스태프들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햇볕도 바람도 좋은 날이었다. 거리가 반짝거렸고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이제 야외에서 마스크 벗고 설 자유를 즐겼다. 말과 표정이 밝았다. 기자회견은 활기찼고 순조로워 보였다. 얼굴을 다 덮는 마스크 쓴 사람들 얘기가 다만 그렇지 않았다. 부당한 해고와 갑질을 증언하던 그들은 자주 울먹거렸다. 무너지기 직전이었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주고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닌 옆자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였고, 프리랜서 방송작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 소속 배달노동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배민 자체 내비게이션의 실거리 오류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한 뒤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배달의민족이 자체 개발한 지도 프로그램이 최종 거리만 공개해 요금 측정 근거를 알 수 없고, 배달에 소요되는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측정돼 거리와 요금 깎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고통보를 받은 비정규 노동자가 길에 섰다. 재판만 10년째, 해고는 3번째, 이게 법이냐고 종이에 적어 물었다. 이미 아득한 시간을 견뎠다. 온갖 회유와 협박, 시간 끌기에 지쳐 떨어진 동료가 적지 않았다. 흔한 일이다. 불법파견 판결에, 부당해고 판정에도 묵묵부답, 꿈쩍 않는 회사는 큰돈 들여 다툼을 이어 간다. 꼼수 써 가며 피해 간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목구멍 밥이 급한 사람들이다. 이러는 법이 어딨느냐고 길에서 기고 굶고 소리쳐 보는데, 메아리가 없다. 깜깜한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길에서 오래 싸운 사람들이 다들 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