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3시. 한국지엠 부평공장 삼거리 앞 신호대기 차량 운전자 시선이 오른편을 향했다. 정문 맞은편 도로에서 파란불에 자전거로 달려오던 야간조 출근노동자들은 위쪽을 쳐다보며 공장 안으로 사라졌다. 이들의 시선 끝에는 9미터 높이 철재구조물 위에 선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이영수(45)씨가 있었다.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지회장 황호인) 조합원인 이씨는 지난달 25일 새벽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2015년 군산공장과 지난해 부평공장에서 해고된 조합원 46명의 복직과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파견·용역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직접고용되면 용역회사가 아닌 병원과 교섭을 하게 되는 만큼 처우개선 요구를 하기에 수월하고, 급여나 복지혜택·안전장비 지급 등의 부분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9월 기준 서울대병원 본원과 강남센터·새마을금고에서 일하는 파
문을 열자 화장실 한 칸보다 작은 공간이 나왔다. 걸레 빨던 곳을 개조해 만든 건물 모퉁이 세모진 장소.“아니, 왜 이렇게 좁아요?” 기자 입에서 이런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혼자 쓰는 곳이어서…. 이 정도는….” 문 뒤에 있던 분회 조합원 A씨가 답했다. 이연순(66)씨가 A씨를 밀어내고 그곳에 들어갔다. 이씨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장이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50~60대다.“이 정도는 무슨. 혼자 써도 다리는 뻗고 살아야지.”이연순 분회장이 다리를 뻗자 공간이 꽉
"안녕? 오빠 나는 단이라고 하는데 오빠 힘내.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꼭 힘네(내). 화이팅(파이팅)!"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이단(7)양은 전태일 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엽서에 삐뚤삐뚤 써내려 갔다. "전태일 오빠가 뭐하던 사람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 단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단이는 "그냥 힘
마음에 난 상처, 트라우마. 몸에 난 상처는 약이라도 바를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보이지 않기에 더 아프다. 일터에서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동료들을 목격한 노동자들도 아픔을 겪는다.산업재해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처 난 마음에 연고를 발라 주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돕는 곳이 있다.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에 위치한 직업적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 '마음쓰담'이다. 노동자 산재트라우마를 관리하는 전국에 단 하나뿐인 전문상담센터다.가 전국 사업장으로 '찾아가는 상담'을 하는 상담
지난달 15일 국회 본관 622호 회의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이날은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로 노동부 장차관과 산하기관장까지, 회의장을 찾은 정부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며칠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계층별 대표 3인이 노사정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에 반발하며 본위원회에 불참한 터라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경사노위 파행을 두고 책임을 추궁하는 야당과 해명과 반박으로 방어하는 정부 관계자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빨라질수록 회의장 중앙에 부동자세로 앉은 속기사의 눈과 손이 더욱 바삐
"컹컹컹."개 짖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깨웠다. 구불구불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산밑에집' 식당 주차장. 짙은 어둠 때문에 산인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환경미화원 김경환(가명)씨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씨가 대형 쓰레기봉투 두 개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 컴컴한 새벽 3시, 그가 의지할 것은 달빛뿐이었다.가 지난 22일 남양주시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 곁에서 새벽 거리청소에 나섰다. 애초 목표는 환경미화원의 위험한 노동을 체험하며
"죄가 있다면 그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회색 작업복을 입고 '생존권 사수'라고 적힌 붉은 머리띠를 맨 김충구(55)씨는 마디 굵은 손가락으로 얼굴을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김씨는 열아홉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용접기술을 배워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했다. 그 뒤로 28년간 조립2부에서 용접을 했다. 산업재해로 1년간 일을 쉬었던 그는 2013년부터 지원직인 공무운영팀에서 용접 관련 수리를 하고 있다."35년간 별일 다 봤죠. 김우중 회장이 망하고 정부에서 내려보낸 사장이란 사람들이 대우조선 돈을 다 빼
청년 김용균이 열사들에게 인사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항거해 몸을 불사른 택시노동자 허세욱, 인권변호사 조영래 곁을 지나갔다. 전태일 열사 오른쪽 뒤편에 자리 잡은 그를 아버지 김해기씨와 어머니 김미숙씨가 한참 바라봤다.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의 하관식이 거행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하루 햇살을 거쳐 갔을 텐데도 묘역 곳곳에 내려앉은 서리는 기운이 생생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김씨가 쉴 장지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용균이가 묻힐 곳은 볕이
지난 11일 오후 3시50분.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에서 겨울 볕에 검게 그을린 노동자가 119 구급대원 안내를 받아 수직 난간을 내려왔다.80센티미터에 불과한 공간에서 두 번의 겨울을 난 몸이었다. 팔과 다리가 돌처럼 굳어 있는 듯했다. 움직임은 느렸고, 간혹 멈췄다. 안전을 위해 몸에 밧줄을 둘렀다지만 보는 이들은 가슴을 졸였다. 25분에 걸쳐 하강작업이 이뤄졌다. 두 노동자가 426일 동안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다시 땅 위에 섰다.새들도 오지 않은 하늘감옥, 두 번의 겨울 난 노동자들같은날 오전
한국과 베트남은 희비가 교차하는 ‘운명의 상대’이자 ‘아픈 손가락’이다. 두 나라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 분단체제가 들어선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과 1992년 수교했다. 지금은 베트남 투자 1위 국가가 한국이다. 얼마 전에는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스즈키컵)에서 우승했다.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풀지 못한 구원이 있다. 한국은 베트남전쟁 때 미군 다음으로 많은 전투병력을 파병했다.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증언이 잇따르는 배경이다.인천지역 시민단체인 노동희망발전
거주 가구가 서른 개가 채 안 되는 충북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 작은 마을에 위치한 노동자쉼터 그린비네(그리움을 빚는 곳)에 지난 11일 수십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곳에서 계간지 (삶창) 20주년 기념 집담회가 열렸다. 시민·사회·노동단체 활동가와 인근 교회 목사님, 해고노동자들과 깊은 인연이 있는 도철스님이 자리를 함께했다. 산길에 함박눈이 쏟아졌다.힘들게 버틴 20년, 젊은 세대와 함께할 20년이날 집담회에는 처음 잡지를 만든 문인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1998년 1월 을 창간한 이
“하루에 15시간씩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놀래요. 요새 그렇게 일하는 곳이 어디 있냐고요.”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봉제공장. 이정기(49)씨가 재봉틀 위 옷감을 움직이며 말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바늘이 빠르게 검정색 옷감을 찍어 내리자 코트의 팔 부분이 완성됐다. 이씨는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이다. 서울지역 봉제노동자들은 지난달 27일 지회를 출범했다. 봉제노동자들이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을 계기로 청계피복노조를 만든 지 48년 만이다.이 지회장은 공장이라기에는 작은 지하 작업실이 전부인 봉제공
간호사 이직률이 심각하다.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밥은 10분 만에 '마셔야' 하는 극한의 노동조건이 간호사들을 병원 밖으로 내몬다. 하지만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은 다르다. 환자가 아니라 '손님'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위압감을 느낄까 봐 의사 가운도, 간호사 근무복도, 환자복도 모두 없앤 병원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양심에 거리낌없이 환자를 충분히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환자가 아닌 '손님'으로 대접하는 병원지난 16일 광주송정역에서 택시를 타고 “
“아, 저기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저기 가면 네 발로 올라가야 하는데.” “저런 곳 겨울에 가면 진짜 힘들어요.” 맥도날드 직영점에서 배달노동자(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박정훈(32)씨가 가파른 계단이 찍힌 사진을 들어 보이자 라이더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가파른 골목길이나 고층건물을 걸어 오른 경험 한번 없는 배달노동자가 어디 있겠는가. 한
“지난 49일간 그가 남겼던 가치를 하나씩 소환하고 의미를 새겼습니다. 하늘에 있을 친구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무슨 말을 할까. 이제 움직일 때인 거 같습니다. 그가 꿈꿨던 세상, 따뜻하지만 조금 유쾌하게 가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고인을 고2 때 만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활동을 함께했던 친구이자 동지였던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은 9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노회찬 전 정의당 국회의원 49재 추모행사에서 이같이 입을 뗐다. 다음 말이 이어졌다.“노회
여기 이상한 경기가 있다. 흔한 “이겨라”는 구호도 없다. 상대편이 골을 넣었는데 제 팀이 역전골을 넣은 듯 환호한다. 상대편 선수와 부딪혔는데도 그냥 웃는다. 선수 하나 다쳐 넘어지면 우리팀 상대팀 할 거 없이 우르르 달려간다. 걱정스런 얼굴로 괜찮은지 살피고 일으켜 세워 안아 준다.섭씨 35도 폭염이 기승을 떨친 날.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날씨. 그럼에도 전후반 60분간 운동장을 뛰는 선수와 땡볕에서 응원하는 3만여 관중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경기. 그 이상한 경기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1층 식당이 오전부터 시끌벅적했다. 꿀잠 이사장인 조현철 신부가 황기·엄나무·파·마늘을 듬뿍 넣어 뽀얗게 끓여 낸 토종닭을 접시에 담아 차례차례 내오자 작은 탄성이 터졌다."유기농 조선닭이니까 맛있게 많이 드세요."'셰프' 박행란씨가 채 식지 않아 뜨거운 김이 나는 백숙을 손으로 쭉쭉 찢으며 말했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살 한 점을 소금에 찍어 입에 넣었다. "쫄깃쫄깃 꿀맛이네."이날 꿀잠이 지난달부터 시작한 '꿀밥
지난 21일 오후 서울 은평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2층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노조 사무실. 박진우(32) 노조 사무차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다.“아유~ 반바지 입은 걸 보니 벌써 여름이네.”인기척이 들리자 컴퓨터와 낮은 칸막이 사이로 얼굴을 맞대고 앉은 셔틀버스노조 간부가 알은체를 한다. 박진우 차장이 덥다는 듯 손부채질을 하며 씨익 웃었다.노조는 서울본부 사무처를 비롯해 네댓 노조와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낮은 칸막이로 구획을 나눠 놓긴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박 차장은 "다른 노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