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지독한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아니,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에는 희생자의 숫자만이라도 오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8년 전과 같은 오보는 없었다. 그날 TV에서 바다에 잠긴 배를 목도했던 순간은 그대로 복제돼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으로 남았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우리는 다시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일상의 안부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있는지’ 물어야 했다. 그대들은 안전한지, 자녀들은 무사한지 물어야 했고, 걱정할 사람들을 위해 S
지역에서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권한을 이용해 적극적 노동행정을 펴 줬으면 하고 바란다.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이 대표적이다. 지자체가 예산과 권한을 활용해 이러한 활동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산업현장에서 다치고 죽는 노동자는 줄어들 것이다.다행히 2014년 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서울시와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 노동정책을 펼쳤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노동문제를 경제와 일자리의 부수적 문제로 인식하는 데서 벗어나 독
이태원 참사 이후 이틀을 멍한 상태로 보냈다. 종일 사고 소식을 들여다보고 사건을 계속 검색한다. 계속되는 죽음의 소식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게 트라우마구나 생각한다. 홍수가 나면서 일가족이 지하에 있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밤샘 노동을 하던 여성노동자는 홀로 일하다 배합기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매몰돼 아직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 매일매일 전해지는 산재사망 소식, 매일매일 전해지는 사고 소식. 이를 들은 우리는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우
지난달 31일 국제노동기구(ILO)가 열 번째 ‘ILO 일의 세계 관찰’(ILO Monitor on the World of Work)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서 ILO는 최근 몇 달 동안 글로벌 노동시장 전망이 계속 악화해 왔다면서 올 4분기에는 글로벌 수준의 고용성장이 심각하게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특히 많은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하락시키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위기 동안의 소득 감소와 맞물리면서 저소득층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시장 악화가 고용창출과 일자리의 질 모두에 안
본지 2022년 11월2일자 4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14년 만에 최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8월 고용원이 없는 ‘나홀로 자영업자’ 규모(433만6천명)는 2008년 455만8천명을 기록한 이후 14년 만에 최대 규모이기에 바로잡습니다.
혹자는 ‘공정’이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이 말을 가장 즐겨 쓰는 사람은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일인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며. 정치인 가운데도 가장 영향력 있는 자인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유력 정치인들이다.여권의 유력 대선후보 이재명은 자신의 정치적 지표를 ‘공정과 성장’이라고 규정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이라고 했다. 여권의 또 한 명의 유력 후보 이낙연은 문재인 정부의 계승자를 자임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지표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이며, 그 가운데 으뜸은
유족의 호소지난 6월26일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고, 언론보도가 나온 뒤 7월11일엔 한 대선후보가 서울대를 방문해 정치 쟁점으로 번졌다. 2년 전에 있었던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다시 일깨우며 8월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진 뒤에야 나는 유가족이 나오는 동영상들을 봤다.배달도 했던 유가족은 사고를 한 번이라도 당해 보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할까. 미국 대통령이 항공우주국(NASA)에 가서 청소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사람을 우주
1. 말은 명확하지 못하고, 행동은 방향이 없다. 대선을 앞둔 이 나라에서 노동의 말과 행동이 더욱더 그러하다. 이런 세상에서 그나마 8·15 광복절이 있었기에 지난 한 주는 조금은 달랐다고 해야 하나. 친일 민족반역과 자주독립 애국으로 세상을 명확히 갈라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있어서, 그 하루만이라도 머리가 선명히 맑았다며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흐리멍덩한 세상이다. 노동과 자본으로 세상을 갈라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선 긋기조차 힘겨워 보이고, 그은 선은 희미해진다. 이런 세상에서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노동자·민중이란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사회경제적 배분으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의미했다. 민주화를 선도한 학생운동 세력이 연대의 주체로서 호명한 용어이기도 했다. 과거 ‘민중 프로젝트’는 민주화과정에 기여한 측면도 있으나, 이후 ‘노동자’가 ‘노동하는 보편적 시민’이란 의미로 자리 잡지 못한 원인으로 이어지게도 했다. 노동자·민중론에서 노동자란 노동하는 보통의 시민보다는 ‘탄압받는 소외된 약자’이자 ‘제조업 블루칼라’, 혹은 ‘계급투쟁을 완수해야 하는 주체’라는 좁은 의미만 가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전히 ‘노동 문제’는 노동
작년 이맘때쯤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 닥친 코로나19 전염병이 인류에게 던진 숙제가 무엇인지 찾아보기 위한 시도가 많았다. 환경 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행동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는 이야기, 인류에게 닥친 재앙에 가장 위험하게 노출된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를 경험한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돼야 할지를 주제로 한 토론회도 많이 열렸다.하지만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에도 오히려 더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러
뱅갈루루를 떠나 밤새 달린 기차는 남부 인도의 중심 도시 코친의 에르나쿨람역에 새벽 3시 반이 돼서야 도착했다. 그 전날부터 이어지는 기차 여행이라 지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8시간 반 만에 딱 떨어지게 도착한 걸 위안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동의 시작이라는 게 문제였다. 여기서 오늘 목적지인 문나르까지 가려면 또 대여섯 시간은 족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체력은 여행력! 뱅갈루루에서 챙겨온 바나나 하나를 까먹으면서 결전의 의지를 다진다. 짐을 챙겨 내린 에르나쿨람역은 북부의 여느 기차역과는 달리 깔끔하다
멕시코 아래, 온두라스 더 아래 카리브 해안엔 미스키토 인디언이 살았다. 미스키토 부족은 4번째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에게 약탈당하는 등 16세기부터 유럽인들과 꾸준히 접촉했다. 유럽인이 끌고 온 아프리카 노예들과 결혼하면서 문화 교류도 일어났다.미국은 1926년 독립을 향해 혁명을 일으킨 니카라과에 해병대 5천명을 파병하고 7년 동안 주둔시켰다. 미군 다음엔 장장 46년에 걸친 친미 소모사 독재정권이 들어섰다. 소모사에 맞선 산디니스타 반군이 1979년 집권에 성공했다.산디니스타 정권은 미스키토 부족에게 스페인어 사용을 강요하는 등
“올해부터 갑자기 대학 시설팀 팀장이 우리한테 강의실 내 시스템 에어컨을 분해해서 싹 닦으라고 하지를 않나, 위험한 외벽 청소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한두 시간에 되는 일도 아니고 100개 넘는 강의실 에어컨을 닦으려면 우리가 하던 청소일은 어쩌라고요.”서울의 어느 사립대학 청소 노동자들이 상담을 요청하며 하소연했다. 기존 업무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인 만큼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용역업체 현장 관리자에게 알려 원청과 협의하도록 요청하라고 조언했다.“(용역업체 관리자에게) 불만을 이야기했더니, ‘일 그만하고 싶냐’며 대학이 시키는
콜센터 상담사들은 대다수가 최저임금을 받는다,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도 최저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일하는 곳이 공공기관이든, 민간업체이든,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최저임금이 기본값인 것처럼 고정되어 있다.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만 임금인상이 이루어질 뿐이다. 누가 이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어도 된다고 규정했나?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라는 사회적 편견, 주로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고용
트위터에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이라는 계정이 있다. 날마다 일의 세계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지난 7일에만 천안의, 고양의, 태안의, 서로 다른 공사 현장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 온다. 마주하기 두렵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이 성실하고 서러운 기록을 멈출 수 있는 날이 올까.계정을 설명하는 문장을 옮겨 둔다. “하루 7명, 일 년에 2천여명이 일하다 죽는 지옥 같은 나라 대한민국. 저들이 만든다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생명 있는 목숨들의 죽음은 슬프다. 천명을 누리지 못한 채 일찍 져버린 목숨이라면 더 슬프게 가슴에 와 박힌다. 그래서 요절(夭折)이라는 낱말은 언제나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만 스물여덟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의 요절이 그렇고, 천재적인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 채 만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승을 떠난 가수 유재하의 요절이 그렇다. 몇 살 이전에 죽어야 요절이라고 할까?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는데, 요절에 해당하는 나이들을 가리키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있다.중상(中殤): 12세부터 15세 사이에 죽음.
1. 근로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1주일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힘겹게 책상에 앉아 자회사 전적자들의 파견소송 항소심사건에 관한 항소이유서 등을 작성하느라 한가할 틈이 없던 지난주였다. ‘사무직에 대해서 별도로 노사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물었다고 직접 전화를 받았던 J노무사는 내게 전했다.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교섭단위분리신청 재심사건을 진행했던 LG전자 주식회사에 관해서였다. 사무직 노동조합을 대리해서 나는, 기능직 중심의 기존 노동조합은 사무직 노동자를 대표해서 제대로 교섭하기 어렵다며 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
우리나라엔 공공기관이 350개쯤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공기관은 시장형·준시장형·기금관리형·위탁집행형·기타 공공기관으로 나뉜다.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기업 앞을 지나다 보면 경영평가 연속 ‘(최)우수’ 기관 지정이란 환영 플래카드를 볼 수 있다. 공기업 경영평가는 기획재정부 주도하에 꾸려진 경영평가단이 맡는다. 대개 교수와 관련 학자가 경영평가위원으로 들어간다.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이 2007년 8월 무더위 속에 이화여대에서 공공기관 경영평가 중간발표회를
최근 한 기사를 보고 다시금 좌절했다. 성추행 혐의 고소 이후 사망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쪽 법률대리인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어느 한 변호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 관한 기사였다. 새삼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여직원들과 회식·식사는 물론 차도 마시지 마라”고 기업에 자문했는데, 이제는 “여비서를 아예 두지 마라”고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조언은 비법과 같은 자문이거나 획기적인 자문이 아니다. 남성들이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명분으로 직장 등에서 여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자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
본지 2021년 8월3일자 6면 “과천시 해직공무원 17년 만의 ‘출근날’”에서 해고연도는 2015년이 아니라 2005년, 파업연도는 2014년이 아니라 2004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김은환씨 복직 직급은 지방사회복지주사보에서 지방사회복지주사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