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멀다고, 그 앞 움막 사는 남자가 말했다. 신작로가 반듯했지만 실은 거기 깊은 산골이었다. 겨울이면 가슴팍까지 눈이 쌓이고 삵과 노루가 먹이 찾아 내려와 붐비는 자리란다. 재 너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는 늙어 낯익은 골짜기에 움막을 지었고 빨간 머리띠를 둘렀다. 보이지도 않는 현장을 바닥 그림 보태 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다시금 해는 길어 봄기운 천지에 무성하다. 땅 아래 웅크려 겨울을 견딘 온갖 잡풀이 삐죽 연녹색 잎을 내민다. 쑥이 쑥쑥 올라온다. 노란색 산수유 꽃망울이 톡톡 터진다. 개나리, 민들레가 저마다 분주하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엄마는 풀밭에 쭈그려 앉아 봄을 캔다. 겨울이 답답했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그 곁에 뛰논다. 봄 소풍 가잔다. 그리고 돌아오지
제 손톱 깎기는 쉬워도 남의 손톱 자르긴 어렵다. 혹시 다칠까, 손 내밀어 맡겨 두기도 마뜩잖다. 믿음이 우선이다. 한 번에 될 일은 아니다. 저기 무대 오른 대표자들은 다들 제 머리띠 묶는 데엔 선수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익숙하다. 남의 머리띠 묶는 게 다만 낯설다. 이마 어디쯤이 적당한지, 좌우 균형은 맞는지, 매듭은 얼마나 당겨 묶을지가 모두
남편은 잘렸다. 바람 많이 불던 날 낯선 거리에서, 아내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뭉텅 잘린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놓질 않았다. 자주 울었다. 까칠까칠한 머리에 얼굴 묻고 꺽꺽거렸다. 울음 눌렀다. 노조 깃발 목에 두르고 앉아 아무 말 없던 남편 눈이 따라 붉었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코끝에 매달려 바람 따라 흔들렸다. 툭툭 떨어져 시멘트 바닥을 뒹굴던
서울 남산 아래 우체국 앞 터에 봉수대가 있다. 밤에는 횃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를 올려 위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시설이다. 요즘 소식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타고 흐르니 그저 유물이다. 상징물이다. 통신비정규 노동자 두 명이 그 뒤편 전광판에 올라 농성한다. 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한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며 비정규직 처지 위급한 소식을 전한다. 불씨 되기를
흰 옷 입은 저들은 오체투지 행진을 할 예정이었다. 아침부터 모였지만 해가 다 눕도록 출발하지 못했다. 막아선 경찰은 해산을 명령했다. 손팻말과 인원수와 옷에 붙은 선전물 따위를 트집 잡았다. 국회 앞 기자회견이 유례없이 길었다. 몸싸움이 잦았다. 사복 경찰이 그 자리 지키던 한 사제의 멱살을 잡기도 했는데, 그 경찰 입에서 진한 술 냄새가 풍겼다고 사람들
겨울 그늘진 곳에 농성장을 꾸렸다. 강바람 드센 자리였다. 비닐 덮개 간신히 바람을 막는 정도였으니 노숙농성은 시작부터 고됐다. 100일이 훌쩍 넘어 충분히 길었다. 언젠가 진짜 사장 집 앞을 찾아가 삭발했고, 남산 어드메 높은 빌딩 앞을 찾아가 큰소리 지르기를 끼니 챙기듯 부지런히 이어 갔다. 낯선 구호와 노랫말이 어느덧 입에 착착 붙어 단결투쟁, 결사투
허허벌판에 칼바람 일어 허수아비 춤춘다. 다 거두고 그 들에 이제는 쭉정이도 귀했지만, 덜렁덜렁 바람 따라 쉬지 않고 춤춘다. 굶주린 새가 날아들어 언 땅을 뒤지다가 요란스런 춤바람에 놀라 급히 떠난다. 어둠 짙은 밤을 새워 만석꾼의 땅을 지킨다. 사람 꼴을 닮았다. 기다란 막대기에 밤새 매달렸다. 어슴푸레 동이 텄고 공장 굴뚝이 선명했다. 사람은 저기 굴
겨울, 어느 건설현장이 새벽부터 분주했다. 뚝딱뚝딱 형틀 짜던 목수가 몸을 녹이려 쉼터에 잠시 들었다. 담배 한 개비 꺼내 물었다. 가늘고 긴 것이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빨았다. 날숨이 한숨처럼 길었다. 연기 따라 자욱했다. 자주 고개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종종 눈을 비볐다. 군더더기 하나 없었으니 그건 오랜 버릇이었다. 이마에 새긴 나이테만큼
저기 나무 높은 자리에 까치가 산다. 거뭇거뭇 두 덩이, 까치집이다. 부지런히 드나들지만 언 땅에 벌레가 귀하다. 감나무에 까치밥 인심은 오래전에 사납다. 까악깍 자주 울었다. 그리고 종종 어디 굴뚝 높은 자리엔 사람이 산다. 까치집 머리를 하고 텃새처럼 머문다. 펜과 카메라 든 기자들이 그 아래를 철새처럼 오갔다. 불 지피던 사람들은 언 땅을 기었다. 이
흰옷 입은 사람들이 땅을 기었다. 양팔과 두 다리며 이마를 다 낮추느라 행진은 느렸다. 거기 눈길, 흙길, 또 얼음길이었지만 북소리 어김없었다. 꾸물꾸물 나아갔다. 잠시 멈춰 쉰 곳은 어김없이 오랜 싸움터였다. 그 사연 다 듣자니 행진이 또 느렸다. 성탄절 선물 품에 안은 아이 곁을 지났고, 경적 울려 대는 고급승용차 앞을 기었다. 종북세력 척결 농성장을,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갔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정당했다고 법은 끝내 말했다. 공장으로 돌아가자던 사람들이 말없이 공장으로 돌아갔다. 돌고 돌아 굴뚝이다. 우뚝 솟아 멀리서도 선명했다. 공장은 돌아갔다. 연기가 풀풀 쉼 없이 솟았다. 바람 따라 자주 누웠다. 바람이 분명했다. 얘기 좀 하자고 언 입을 떼고 말했다. 눈엣가시 자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비였다고 새로 시작하는 어느 사극 광고판에 적혀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빠고 엄마라고, 길에 나선 노동자들이 말했다. 아들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고, 그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고 싸움에 나선 이유를 곱씹었다. 교섭은 지지부진했고 바람은 날로 차가웠다. 세종로 높은 옥외전광판 좁은 틈에서, 여의도 강바람 드센 그
된바람에 낙엽 날더니, 금방 눈 쏟아진다. 빗자루며 쓰레받기 들고 경비노동자가 일복에 겨웠다. 무 배추 토막 널브러진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적이다가 어느새 잔뜩 쌓인 재활용품 자루를 묶는다. 차곡차곡 폐지를 쌓고, 깨진 유리병 조각을 그러모은다. 언 손 녹이려 들어간 초소엔 택배 상자 가득하다. 내선 전화 시끄럽게 울어댄다. 층간 소음 화풀이가 수화기 너머
주강이는 대법원 앞에서 내내 웃고 활달했다. 이리 뛰고 저리 구르는데 거칠 것이라곤 없었다. 눈빛 맞추면 누구나 이모, 삼촌이다. 거기 모인 누구와도 스스럼없었다. 카메라 앞을 지나면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잊지 않았다.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안에서 세발자전거 끌던 시절부터 닦아 온 솜씨다. 파업 현장을 놀이터 삼았고, 어느 거리 집회장소로 소풍 갔다
노랗고 붉은 가을, 비닐하우스에선 온갖 것이 말라 간다. 빨간 고추 고루 말린 자리 빌 새도 없이 벼·수수·참깨·들깨·나물이며 버섯이 두루 바짝 마른다. 가을걷이 언제나처럼 신통치 않았지만 겨울 앞자리 비닐하우스는 발 디딜 곳 없어 그래도 풍성하다. 저기 늦도록 수확 못 한 도시 농부들이 세종로 돌 바닥에
전동 이발기 든 동료는 손이 빨랐다. 망설임 따위 없었고 능숙했다. 구호 새긴 보자기 목에 두른 사람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처분을 기다렸다. 머리칼 날아들었던지 자주 눈을 감았다.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칼이 흰색 보자기 타고 흘렀다. 빛바랜 머리칼이 뎅겅 잘려 검은 바닥에 뒹굴었다. 민낯을 드러낸 머리가 가을볕에 유난히 반짝거렸다. 앞서 삭발한 이가 뒤따른
겹겹이 쌓아 올린 카트 더미가 무너졌다. 검은 옷 날랜 경찰이 줄줄이 들이닥쳤다. 계산대 옆 바닥에 누워 버티던 노조원들이 하나둘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나갔다. 비명 잦았고, 울음소리 어지러이 섞였다. 바깥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유리창 두들기며 같이 울었다. 이리저리 맞잡은 손 아래 저기 파업 나선 비정규직 계산원이 아무 말 않고 그 모습을 늦도록 지켜봤다
시간은 어김없다. 찬바람 불어 훌쩍 가을이다.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유가족과 시민이 낙엽 지는 4월16일을 또 하루 산다. 낙엽 빛깔을 닮은 황갈색 담요 싸매고 바람길에 앉았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 바람을 다시 읊었다. 농성이 이어진다. 참사가 이어진다.
광화문광장 옆 큰 책방 건물 벽에 나무 그림 붙었다. 하나둘, 이파리 떨구는 나무 아래 산 사람들이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긴다. 고개를 떨군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떠났다. 구르는 낙엽 보고도 눈물 떨구는 엄마 아빠가 농성장을 떠나지 못한다. 낙엽 빛깔을 닮은 황갈색 담요 싸매고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새파란 하늘 살피던 눈에 노을빛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