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노동자가 산업재해 상담을 하고 싶다며 진료실을 찾았다. 인근에 위치한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였다. 1주일 전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업무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부딪치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그 이후로 오른쪽 무릎과 양쪽 어깨가 아팠다고 한다. 어지간하면 참아 보려고 했는데 너무 아파서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쉽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관리자에게 얘기했더니 관리자가 산재를 신청하라고 관련 서류들을 줬단다. 이런 경우 산재가 되는지, 산재 신청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사업장에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보건관리체계가 있다. 보건관리체계를 통해 일하며 생기는 질환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업장에서 기능하도록 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장 규모나 종류에 따라 법적으로 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필자는 사업주가 위탁한 보건관리전문기관에서 사업장을 방문하는 형태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하다 보면 사업장 보건관리가 근본적으로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물론 대규모 사업장과 일부 서비스 공급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산업재해 재심사 청구를 심리·재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를 두고 있다(법 107조). 산재재심사위는 1년에 3천500건 이상을 의결하는 행정심판위원회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내부 운영과 판정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받은 바가 없다. 산재재심사위 운영과 판정 문제는 다음과 같다.지난해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산재재심사위 위원수가 60명에서 90명으로 증원됐으나, 여전히 일부 위원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 산재재심사위가 산재보험급여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심리·판단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6월26일은 유엔이 정한 고문 생존자 지원의 날이다. 잘 알려진 날은 아니지만, 엄연히 이들은 국가폭력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이자 생존자로서 잊을 수 없는 역사로 존재한다. 1998년 이날을 지정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오늘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인내해 온 이들에게 우리의 존경을 표하는 날”이라 칭하며 고문 피해자들의 고통을 위로했다. 여러 나라에서 국가폭력 재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지혜를 모으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대공분실에 끌려가
업무상질병에 대한 심의·판정의 객관성·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은 지역본부별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운영규정 14조2항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심의사건의 신청인 또는 청구인·보험가입자·주치의사, 그 밖에 해당 전문가가 심의회의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행정처분에 앞서 이해관계인의 절차적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요청에 부합하며, 처분절차를 투명하게 해 사실인정과 법령의 해석·적용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처분의 적법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삼성전자 LCD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님이 지난 5월30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 인정 통지를 받았다. 2009년 최초로 산재를 신청해서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했으나 지난해 재신청해서 10년 만에 인정받은 것이다.한혜경님은 모듈과 인쇄회로기판(PCB)에 전자부품을 납땜하는 SMT공정에서 5년9개월간(1995년 11월~2001년 7월)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면서 납과 플럭스·유기용제 등에 노출됐다. 재직 중 건강이 나빠져서 퇴사했고, 퇴사 4년 뒤에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소뇌부에 발생한 뇌종양을 수술로 제
지난달 34살의 젊은 집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수면 중에 사망했으며 부검 결과는 돌연사라고 보도됐다. 필자가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사업장의 노동자였다. 그 사업장은 수년 전에도 보건관리를 했던 사업장이어서 당시 상담 풍경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올해 다시 필자가 소속된 기관으로 재계약이 돼 첫 의사 방문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수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보건관리를 하러 방문을 해도 일과 중에는 정작 집배노동자를 본사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기억, 그리고 사무실 직원 또는 가끔씩 일찍 복귀하는 집배원들만 불특정하게 상담했던 어려움이 생각
검붉은 유증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영상으로 접했지만 마치 현장에 있듯 공포가 밀려왔다. 지난 17일 충남 서산에 위치한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에도 유증기가 유출됐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인근 주민 2천여명이 치료를 받았다. 이곳에선 지난달 26일에도 유증기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유출된 유증기는 스티로폼 같은 합성수지 제조원료인 ‘스타이렌모노머’ 성분으로 확인됐다. 흡입할 경우 구토·어지럼증·피부 자극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현장 확인을 위해 현지를 방문했던
지난달 25일 저녁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접수를 위한 경호권을 발동하자,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당직자들이 법안 접수를 시도하는 여당 의원을 비롯한 경호기획관실 직원들과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일부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갈비뼈를 다치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별정직 공무원 신분인 보좌관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당 당직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보호대상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부상을 당했다면,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재해에
지난 2일 고용노동부가 2018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발표했다. 해마다 이맘때쯤 전년도 산업재해 발생현황이 발표되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까지 자살·교통사고·산업안전 분야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야심 찬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18년 산업재해 발생현황과 이에 대한 노동부 보도자료를 살펴보자.우선 전체 사망자가 2천142명으로 전년 대비 185명(9.5%) 늘었다. 이 중 사고사망자는 971명으로 전년 대비 7명
2018년 뇌심혈관계질환의 산업재해 인정률은 41.3%(2천241건 중 925건)로 2017년에 비해 8.7%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뇌심혈관질환의 고용노동부 고시(2017-117호)가 개정돼 시행된 점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이전 불승인된 사안이 재판정된 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사건 축소와 판정 질 개선 노력을 한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뇌심질환 사건의 질병판정위 심의·판정은 여전히 개별 사건에서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2018년 질병판정위와 산재심사위원회에서 산재로 불승인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의 목적을 확대해 보호 대상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하지 않고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장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안전교육과 재난사고 예방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정한 헌법 34조6항을 산업현장에 구체화하고자 입법됐다(오상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방안 연구)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국민은 모든 헌법적 권리이자 의무인 노동을 하면서 최소한의 안전보건상 필요한 보호를 받
4월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달이다. 304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달이고,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하다. 1993년 태국에서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8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나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이유는 노동자가 인형을 훔쳐 가는 것을 방지한다며 공장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노동자의 목숨이 가장 싼 비용에 속했던 것이다. 태국만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016년 기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 따른 하위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김용균법’이라고도 불린다. 개정법은 고 김용균씨를 비롯해 그간 산업재해로 사망한 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유족과 노동자들의 열망을 담은 것이었다. 노동계는 법령 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노동계 요구사항이 상당 부분 하위법령안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지난해 12월11일 김용균님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중대재해 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올해 1월 거제 대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 산재보상국 업무상질병부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2018년도 심의현황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업무상질병을 질병별·지역별·규모별·업종별로 구분해 판정건수·인정건수·인정률 등을 이전과 비교한 자료다.지난해 전체적인 인정률은 63.0%로 2017년 52.9%에 비해 10.1%포인트 증가했다. 뇌심혈관질병이 32.6%에서 41.3%로, 근골격계질병이 61.5%에서 70.0%로, 기타질병은 48.0%에서 66.2%로 각각 8.7%포인트, 8.5%포인트, 18.2%포인트 증가했다. 기타질병 인정률이 크게
한 청년이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무더기 해고한 이랜드 회장이 2010년 서울대에 강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항의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에서 그 청년이 제안한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볼까요? ‘사랑하는 ○○○’ 대신에 ‘이랜드 노동자들의’ 생일 축하합니다로.” 그들은 같이 노동자들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뒤 방송국 PD로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 9개월 후 그는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후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지난달 30일 부천 중동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한 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그날 밤엔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변압기 점검 중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같은달 24일에도 이 공장에선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지붕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잘 알려진 대기업이든 이름을 알 수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이든 곳곳에서 노동자가 다치고 아프고 죽어 나간다. 매일 노동자들의 죽음은 업데이트된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늘어나는 산업재해 은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
지난달 중순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취소 소송 당사자였던 유족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이상한 문서가 왔어요.” 전화통화로는 내용 전달이 어려워 당사자에게 그 문서를 가지고 사무실로 오시라고 했다.그 ‘이상한’ 문서는 다름 아닌 ‘소송고지서’였다. 공단을 상대로 사업주가 제기한 산재승인처분취소 소송에 당사자인 유족이 직접 참가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소송고지에도 불구하고 유족이 소송에 참가하지 않고, 이 소송이 사업주 승소로 끝나 산재승인처분이 취소될 경우 이제껏 받았던 보험급여를 모두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특정 상황에 부닥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심한 공포감을 느낀다. 숲속에서 지나가는 뱀을 볼 때,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길에서 기척이 느껴질 때가 그렇다. 이런 공포감은 본능적인 것으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수백 만 년 동안 진화한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심한 공포감을 느껴 잽싸게 도망을 친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유전자를 물려준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의식이 아닐까 싶다.선조들
지난 6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 박선욱의 자살사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2항에 따른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정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평소 고인의 성격을 감안할 때 중환자실에서의 교육 과정과 긴박한 업무수행이 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내에서 적절한 교육 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기학습 과정에서 일상적인 업무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고인은 정신적인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