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애국시민 외치나니 구속반대 탄핵기각. 저기 부회장님 오신다. 기쁘다, 물주 오신다. 성조기 휘날리며 애국보수 외치기를, 땡큐 삼성. 힘내요 부회장님. 좌파 빨갱이는 물러가라. 사탄아 물렀거라. 삼성은 무죄, 대통령도 무죄. 200만 태극기 집회 참여 국민의 분노가 노도와 같이 특검을 휩쓸어도 막을 길 없으리라. 부회장님 구속되면 삼성이 망한
노동조합총연맹의 초대 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감옥에 갇힌 위원장이 비운 그 자리에 마이크 잡고 섰다. 희귀한 병마와 싸운 탓에 수척해진 얼굴에 조명 드니 그늘 짙었다. 주름 더 깊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잘 지내고 있습니까, 언젠가처럼 안부를 물었다. 답이 주춤했다. 간곡한 호소가 뒤따랐다. 목소리엔 뱃심이 붙었고, 손짓이 종종 높았다. 이제 와 흐릿하
아이들은 어느 옛날의 궁궐을 등졌다. 거기 한때 누가 살았는지 모를 일. 다만 지금 그곳에 출몰하는 몬스터가 궁금하다. 환호성, 가끔은 탄식을 뱉는다. 하염없이 걷는다. 손 시린 줄도, 배터리 닳는 줄도 모르고 헤맨다. 조선의 궁궐엔 지금 포켓몬이 산다. 주말이면 빼곡했던 그 앞 광장엔 오늘 블랙리스트 예술인이며 해고노동자 말고도 온갖 야생 몬스터가 산다.
법원은 2천400원을 미입금한 혐의로 버스 기사를 해고한 것이 '사회 통념상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법원은 수백억원대 뇌물죄 혐의를 받는 한 재벌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돈도 실력이라고, 부모를 원망하라던 한 승마선수의 말이 돌고 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은 딸아이 영정을 품고 길에 선 아빠는 오늘 법원 앞에서
저들의 부당한 거래는 겉보기에 나눠 먹기였지만 실은 제로섬 게임이었다.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가 되는 게임. 손실은 이 겨울 손 시린 노동자 시민의 몫이었다. 종종 목숨값이기도 했다. 한패였으니 나란히 수의를 입는 게 마땅하다고 사람들은 특검 사무실 앞에서 외쳤다. 수의를 차려입고 그 아침 시린 손을 꽁꽁 묶어 모았다. 슈트 차림 재벌
길에 선 엄마는 그 손 놓지를 못해 연신 허리 굽었다.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 앞 짧은 만남. 손 인사 건네니 쭈뼛거리던 아이가 제 엄마 품을 찾아 얼굴을 비볐다. 좀 컸다고 형은 뒷자리 지켜 동생을 감쌌다. 노란 옷 엄마가 다가와 슬며시 손잡고 놓지를 않았다. 작은 손을 만지작만지작, 허리 숙여 그 뽀얀 얼굴을 오래도록 살폈다. 눈에 넣었다. 주렁주렁 눈
아마도 2016년 겨울이었을 거야. 추웠어. 저 옷차림 좀 봐. 우스꽝스럽지 않니. 저기가 광화문광장이야. 할머니가 찍어 주셨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 매주 주말이면 저기에 촛불 든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 엄청 많았지. 나쁜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쳤는데 정말 대단했어. 너도 교과서에서 봤겠구나. 엄마도 할머니 손 잡고 몇 번을 나갔어. 어떻게 그랬나 몰
바람 새겨 하늘에 띄우려던 노란색 풍선이 바닥에 뒹군다. 그 자리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어 비좁았던 광장 앞. 촛불이며 스마트폰 불빛 일렁거리며 도도히 흐르던 거리. 검은머리부터 파 뿌리까지, 노조 조끼부터 겨울왕국 공주 드레스까지 누구나가 외쳤던 구호가 저기 풍선에 선명하다. 한데 모여 막힘없이 흐르고 또 넘쳐 이제는 민주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 그
엄마 아빠 손잡고 아이는 광장에 섰다. 거기 민주공화국과 헌법과 주권자 따위 교과서 속 단어가 살아 들끓었다. 촛불 밝혀 밤늦도록 공부했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다 늙은 아빠와 덜 늙은 아들이 광장에 나란히 섰다. 늙은 엄마 팔짱 끼고 주름 많은 딸이 웃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 고맙다. 실은 이런 것도. 잊고 지내던 오랜 친구를 광장에서 만났다.
화려했던 나뭇잎 다 떨군 나무가 앙상하다. 찬바람 불어 훌쩍 겨울, 이것은 자연의 일이다. 순리다. 넓지만 비좁은 광장에서 손 시린 사람들이 촛불에 손을 녹인다. 남극 대륙의 황제펭귄처럼 따닥따닥 붙어 몸을 데운다. 찬바람을 견디고 꺼진 촛불을 이어붙인다. 깃발을 세운다. 비우그라, 저 앞 청기와 집을 향한 함성 높인다. 만사순통이었다니, 순시리는 즉각 퇴
낙엽 지는 거리엔 쓸어담을 것도 많아 빗자루 든 이가 바쁘다. 삼청동 따라 청와대 가는 길. 낙엽 말고도 더러운 것이 거기 널렸다. 허리 연신 굽어 고된 길에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노동요가 흥겹다. 새마음 한뜻으로 모인 봉사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애국의 갈 길을 간다. "단지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려는 것입니다." 막아선 경찰 앞에 외쳤는데, 경찰
신발을 벗어 두었으니 그는 텐트 안에 들었다. 그 앞 울퉁불퉁한 돌길을 오가는 차 소리가 밤새 그치질 않고, 아침이면 얼음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작은 비닐 집에서 그는 기절하듯 잠이 든다고 일기에 적었다. 현금 20만원을 찾아 애들 엄마에게 쥐여 주며, 다 쓰기 전에 돌아오겠다며 웃었다던 그는 지금 남은 돈이 있을까를 걱정한다. 가방에 구겨 넣은 짐은 사흘치
소식 뜸하던 동기가 전화를 걸어왔다. 대뜸 이게 나라냐고 묻고는 말이 없다. 질문의 꼴을 갖췄지만 답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서로 알았다. 한숨이 같이 깊었고 적막이 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 소식이 들려온 날에도 그 친구와 나는 별말이 없었다. 먹던 밥을 다 남기고 나와서 멀뚱히 선 채로 연기만 삼키고 뿜었다. 한동안 연락 없던 후배가 늦
꽹과리, 장구 소리 너른 터에 울린다. 높다란 솟대에 걸린 까만색 천이 바람 탄다. 춤추던 이가 몸 던져 흰 천을 가른다. 달그닥 훅 더르르 거기 네거리에 굿거리장단, 난데없는 굿판에 구경꾼이 빼곡 빙 둘러섰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검은 옷에 빨간 칠을 해서 온 데 누비던 화가는 가끔 양팔 벌려 우주의 기운을 모았고, 검은 옷의 음악가는 마음속에 메
사람들 흰 국화 들고 줄줄이 섰다. 얼굴 없는 영정 앞에 향을 피웠고, 고개 숙였다. 안전화와 안전모와 안전띠가 그 앞자리에 가지런했다. 망자의 것은 아니었다. 2013 대한민국 안전대상 소방방재청상 수상 기념 동판이 박힌 어느 통신 대기업의 높다란 빌딩 앞이었다. 일터는 높았고, 비가 줄줄 내렸다. “일이 많이 밀려 있다. 다 처리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해거름, 낮게 깔린 붉은 빛 온 데 사무쳐 무심코 평범한 것들조차 특별하게 물들던 시간. 걸음 바삐 놀려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은 열리지 않는다. 어둠 곧 짙었고 분간할 수 없는 실루엣이 일렁거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 저 멀리 흐릿한 것이 곁을 주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짙다. 사람들은 촛불을 밝혔다. 경찰 방패 잠시
바람 불어 훌쩍 가을이다. 쌀알 차올라 고개 숙이고 사과·배가 태양 빛 아래 익어 간다. 잠자리 짝지어 날고, 메뚜기가 팔짝 뛴다. 활짝 핀 코스모스 흔들리고 갖은 모양 흰 구름이 흐른다. 할 말 없어 그 말도 많은 추석을 애써 견딘 청년들이 푸를 청,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땀 흘린다. 팔뚝이며 목덜미가 사과처럼 붉게 익어 간다. 커다란 천과
먹구름 짙었고, 꾸르릉 꾸릉 하늘이 울었다. 번개가 번쩍, 꽈광 꽝 천둥소리 뒤따라 거기 죄 많아 창살 없는 길 감옥 신세 오랜 사람들이 기겁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 걱정 많은 게 노숙농성 하는 사람들 숙명. 쏴 하고 소나기 쏟아지니 거기 금세 진자리다. 앉아 오래 버티던 사람들 황급히 일어나 채비한다. 얇디얇은 저 비닐 옷은 곧잘 팔 뻗다 걸려
이제는 잠들어 더는 말 없는 어느 거인의 초상 옆자리 간이침대에 노란 옷 입은 사람이 고된 몸을 잠시 뉘었다. 가슴팍에 내내 밝게 빛나던 스마트폰 화면에 묻고 답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암호 같아 알아보기 힘든 온갖 문서가 흘렀다. 종종 찡그린 표정 방청객 얼굴도 보였는데, 그들 옷차림이 노란색 한결같았다. 거기 참사의 진상을 심문하던 자리. 국회 어느 너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아가 단식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만났다.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다. 추 대표는 야 3당 공조로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유가족의 단식 중단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