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엄마가 영화표를 한 장 줬다. 노동조합에서 나온 거라고 했다. 어느 공장 식당에서 밥 짓는 일 했던 엄마는 으레 그 회사 직원이었고, 노조 조합원이었다. 알게 뭐람, 공짜라면 그저 좋아 혼자 극장으로 내달렸다. 이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종종 버거웠다. 돌아와선 재밌었다고만, 엄마에게 말했다. 자율적이지
비 요란스레 쏟아졌다. 우수수 낙엽 졌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사물놀이패가 무대에 올라 영남농악을 두들겼다. 관계자 몇몇이 흥을 돋우느라 그 앞에서 비 맞아 가며 덩실댔다. 팔도 농촌 특산물 천막에는 낙엽만 다닥다닥 붙었다. 가을, 광장엔 이런저런 축제가 많았으니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비가 온대도 약속은 지켜야 했다. 청와대 앞길엔 약속을 지켜라, 구호
가을인가 싶었는데 겨울 앞이다. 바람에 낙엽 진다. 썩어 흙에 거름으로 들어야 할 것인데,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촘촘한 탓에 쓰레기 신세다. 시설관리 노동자가 빗자루 들고 바쁘다. 화단 가꾸랴, 눈 치우랴, 그도 아니라면 껌을 떼고 여기저기 낡은 것들을 고치고 메꾸느라 실은 사철 바빴다. 밥벌이 방편이었으니 그 길가에 망치질하는 사람 조형물처럼 쉼 없이 움직
곧 넘어가는 누렇고 붉은빛이 여의도 어느 국책은행 외벽에 맺혀 빛났다. 거기 노란 낙엽 더미 위로 시가 흘렀다. 가을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저마다 노랗고 빨간 나무 아래 서성이던 노동자가 고개 들어 시를 훑는다. 그의 등에도 얼핏 해가 들어 빛났다. 거기 구호가 흘렀다. 진짜 사장이 직접 고용하라, 그건 노동존중 사회의 핵심 약속 중
굽이굽이 산길 돌아 한데 모인 사람들이 연신 구호를 외쳤다. 붉은색 머리띠 묶고 총파업을 결의했다. 삼삼오오 모여 토론했다. 앞길을 모색했다. 산과 바위, 흐르는 물길 어우러진 절경 앞에서다. 저물녘 얼마 남지 않은 볕이 맞은편 산허리를 올랐다. 노란 가을빛 물든 동강 변으로 노동조합의 지도위원들은 걸었다. 대의원대회 자료집이며 거기 뿌려진 온갖 선전물을
무엇이 평화를 가로막는가. 거리의 예술가들이 물었고, 지나던 시민이 종이에 적어 답했다. 남북의 평화에서 마음의 평화까지 메시지는 다양했다. 나도 취직하고 싶다고 취준생은 적었다. 지난 명절 차례상 앞에서, 어제 또 오늘 평화로워야 할 저녁 밥상 앞에서 간절했던 그 마음일 테다. 포장마차 컵밥을 뒤적거리며,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을 뜯으면서도 떠나질 않던 생
민복이라 불리는 흰색 옷에 조끼 차림을 한 사람들은 대개 단식을 하거나, 언 바닥을 기거나, 먼저 간 동료의 상을 치른다. 부당함을 말하는 일이란, 소리통을 키우는 일이란 더 큰 고난을 오래 견디는 일이 됐다. 종종 강성노조 오명이 따라붙었다. 자동차 만들던 노동자들이 청에 들어 농성한다. 여럿이 밥을 굶는다. 불법 시정, 뻔한 말을 어렵게도 한다. 적폐
청와대 앞길에 깃발이 천지다. 한반도기 휘날려 적대청산 큰 걸음 내디딘 남북 정상의 만남을 기념했다. 노조 깃발 줄줄이 서 적폐청산 큰 걸음을 촉구했다. 노조할 권리며 불법 시정 따위 법전에 뻔한 말을 내내 읊었다. 노조파괴며 온갖 부당노동행위와 꼼수와 거짓말을 전하던 연사는 금세 목이 쉬었다. 결코 평화란 없다던 노랫말 따라 몸짓 공연이 격했다. 노조를
머리칼은 딱 머털도사인데, 왜 도술은 못 부리나. 대한문 분향소 지키던 윤충열씨가 삐죽삐죽 멋대로 뻗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삐죽거렸다. 뽑아서 훅 불어야 한다고, 누군가 비기를 전했다. 뽑는 시늉을 했다. 저 나이에 머리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고, 다른 이가 나서서 말렸다. 타박했다. 머리칼만큼 많은 날이었다. 도를 닦았다면 진작 도술에 능했을 터,
경복궁 돌담 따라 오르는 고풍스러운 길. 언젠가 사람들 여길 지나도 될까 망설이다가 돌아섰던 길. 그러나 기어이 촛불 밝혀 행진했던 길. 이제는 연인들의 이색 산책로, 자전거 탄 사람의 운동코스, 셀카 명소다. 그 길 끝 즈음이면 알록달록 농성 천막이 단풍처럼 화려하다. 곧 행진해 올 집회 참가자들이 깔고 앉을 돗자리가 낙엽 더미처럼 쌓여 있다. 계절은 돌
큰비는 흘러 더러운 것들을 씻어 낸다. 길바닥에 개똥 같은 것들이 뒹굴다가도 한바탕 쏟아진 비에 말끔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잘린 사람들은 분향소 천막 부여잡고 죽음을 말린다. 살아 지옥을 견딘다. 9년째다. 언젠가 대테러 진압작전 벌어진 공장 옥상 불구덩이 속에서 두들겨 맞고 피 흘린 해고자가 오늘 경찰청 앞에서 세상 등진 사람의 이름을 부
구름 두텁고 비가 간간이 내렸을 뿐, 한낮 대한문 앞 거리는 평온했다. 종종 해 비쳐 밝았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우산 옆에 낀 사람이 돈 아깝다고 투덜대며 걸었다. 결재서류파일 든 공무원들이 시설물을 점검하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성질 급한 플라타너스 잎이 땅에 뒹굴다 바람에 굴렀다. 비닐 집 날아갈까 마음 급한 해고자가 그 옆 태극기 장수와 얘기하던 동료
안전제일이라고 온 데 많다. 그 말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종종 그냥 넘기기 일쑤다. 건강 챙겨라, 항상 몸조심해라, 밥 챙겨 먹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엄마 잔소리 같은 것이었다. 한 귀로 듣고 흘려 온 말이다. 어디 아프고 나서야, 큰 사고를 겪고서야 눈물로 곱씹는 말이다. 언젠가의 참사 앞에서 사람들은 안전사회 건설을 눈물로 다짐했다. 생명
광장 건너편 낮은 자리에서 가수 박준이 노래한다. 작은 모금함을 앞에 뒀다. 뇌출혈로 쓰러진 LG유플러스 비정규 노동자에 작은 도움 주기를 노래 틈틈이 알렸다. 일어나,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퉁겼다. 노조 깃발 들고 그 길 지나던 사람들이 습기 머금은 지폐를 통에 넣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야, 가수 박준은 마저
폭염이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가 지쳐 간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 그저 견딘다. 길에 나설 이유 많은 사람들은 오늘 또 달궈진 바닥을 긴다. 얼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고 땀이 분수처럼 솟았다. 쉬는 틈에 머리 위로 쏟아진 물줄기가 시원하다. 폭염에 단비다. 잠시 더위를 잊었다. 다시 기었고 또 붉어 갔다. 숨이 가빴다. 나름의 방법으로 견뎌 나아갔다. 해고자
이걸 왜 이제야 샀나 싶은 게 있다. 장맛비 내려 몹시도 꿉꿉하던 날, 마르지도 않은 옷을 거둬 입던 사람은 빨래 건조기가 보물 같다. 틈만 나면 예찬한다. 가득 찬 먼지통을 비우며 뿌듯해한다. 저녁상 생선을 굽다가 뜨거운 기름 튀어 손 좀 아파 본 사람은 에어프라이어가 반갑다. 닭 다리를 구울지 닭 날개를 요리할지 퇴근길 행복한 상상에 젖는다. 한때 제습기가, 힘센 무선청소기가 그랬다. 저기 휴대용 선풍기도 목록에 든다. 바람 세기 보잘것없대도 폭염경보 속 땡볕 아래 절절 끓던 아스팔트에 앉고 선 사람들에게 그만한 위안이 없다.
서울 대한문 앞에 태평소와 북소리 울리면 창칼 든 옛날 옷차림 무관들이 박자 맞춰 행진한다. 스마트폰 든 사람들이 셀카 찍느라 등진 채 웃는다. 과거와 현재가 한자리 머문다. 멀리 관광 온 외국인들이 이국의 색과 소리를 살피고 듣느라 가만 섰다. 다양한 국적이 한데 섞인다. 온갖 나라 말 설명이 순서대로 흐른다. 또 성조기와 태극기, 이스라엘 국기가 거기
언젠가 농성천막 뜯겨 나간 자리에 화단이 봉분처럼 솟았다. 상복 입은 해고자들이 새로운 영정을 들고 그 자릴 다시 찾아와 비석처럼 머물렀다. 상을 차리고 조문객을 받는 일은 새롭지도 않아 누구나가 능숙했다. 갖은 악다구니를 견뎌 자리 잡았다. 땡볕 아래 쏟아지던 온갖 욕설과 저주와 조롱을 삼켰다. 달빛 아래 반복되던 군가와 랩 음악 소리를 그저 듣고 흘렸다
대~한민국, 익숙한 응원의 함성이 늦은 밤에 높았고, 새 아침 벌건 눈을 한 사람들은 목이 쉬었다. 가슴 뜨겁던 승리의 장면을 복기하느라 점심상에 콩나물해장국이 식었다. 속이 시원했다. 국무총리는 “또 현실이 상상을 앞섰다”며 축구 승리에 찬사를 보냈다. "대통령도 밀어내고 독일도 밀어냈다"며 외국방송 앵커는 놀라워했다. 단결 투쟁 결사 투쟁, 오랜 싸움
법 없이는 살아도 밥 없이는 못 살아 밥벌이 간절한 사람들이 욕을 듣고 발에 차이고 침을 맞아 가며 높은 분 시중을 든다. 언제 잘릴 지 몰라 파리 목숨이다. 지옥 같았다고, 노예였다고 전했다. 포토라인에서 고개 숙인 채 연신 죄송하다던 재벌가의 실력자들은 곧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벤데타' 가면 쓴 노동자들이 과연 법 앞에 만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