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다퉈 피어난 눈부신 하얀 꽃잎 어느새 우수수 떨어져 날린다. 연초록 새잎이 곧 빈 자리를 채운다. 절정은 순간이다. 꽃 축제가 끝났다. 파랗고 빨갛고 노랗던 현수막에 적힌 온갖 약속과 확성기 타고 날리던 다짐과 바람 소리 시끌벅적했던 잔치도 끝나고 환호와 탄식이 길에 남았다. 여러 가지 새로워, 과연 봄이다. 보도블록 사이 좁은 틈에, 오랜 건물벽
행진하는 사람들 목적지가 저 앞인데, 빈틈없는 차벽이 진작에 높아 꽉 막혔다. 아우성이 따라 높았다. 일반도로교통방해는 그 죄가 어찌나 중한 것이었던지, 현행범 체포하라는 지휘관의 명령이 추상같았다. 뒷줄에 늘어선 채증 카메라가 일제히 사선으로 뻗었다. 거기 파란색 깃발보다 많았다. 노조 회계장부 훑듯, 사각 없이 그곳 온갖 사소한 몸짓과 표정까지를
언젠가 학교 건물 1층 복도엔 페인트 시너 냄새가 진동했다. 낡고 무거운 소파 양쪽에 벌려 두고 청테이프 부욱 뜯어 흰 천 팽팽하게 고정한 뒤, 그 위로 붓 놀려 글을 새겼다.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이 빠르고 유려했다. 주로 무언가를 규탄하거나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대개 힘찬 기운을 가진 글씨체는 교정 곳곳의 분위기를 한동안 좌우했다. 종종 동글동글 귀
활동지원사노조가 6일 국회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 정책 공개질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3·8 세계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장애인활동지원기관의 30% 이상을 공공운영기관으로 확충 △고용불안해소를 위한 월급제 도입 △노동자 안전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 의무 강화 및 노동안전 관련 이용자 정보 제공 △소정근로시간의 표준화 및 수가를 인건비와 운영비로 구분 지급 등 여성노동안전 정책을 요구했다.
저들은 곧 바닥을 박박 기어 먼 길 행진할 것이니, 오만상 찌푸릴 일이 남았는데, 웃는다. 싸움이 어느새 짧지 않은데, 갈 길이 아직 멀다. 그러나 저들 사이가 더없이 가까워 웃을 일이 있다. 동료 목에 작은 목도리를 둘러 주는 마음이 오체투지 앞둔 긴장감을 녹인다. 봄기운 슬쩍 깃든 그 길에 실은 저것도 곧 더워 번거로워질 것이지만, 그 손길에 한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밖에 떠돌 일 많은 나는 방수 신발을 사랑한다. 어릴 적부터 ‘메이커’를 동경했던 나는 그중에서도 무슨 텍스라는 이름의 기능성 소재라면 껌벅 넘어간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든든한 것이다. 그러니 신발장이 터져 나간다. 통장이 텅 비어간다. 언젠가 멀리 사는 늙은 엄마 아빠에게도 꼭 필요할 것 같아 사 드리려는데, 극구 싫다 하신
스피커 고장은 왜 이리 잦은지, 꼭 약속한 시각 10분을 앞두고 말썽이다. 그중 컴퓨터 전기 전자에 능통하다 인정받는 능력자가 나서도 소용없더라. 스피커와 마이크를 괜히 한 번 두들겨 본다. 전원을 껐다 켜 본다. 어색한 시간을 메우려 조끼 입은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고 또 외쳐 본다. 여럿이 함께라 그 목소리 크기도 스피커 음량에 못지않지만, 구구절절
한때 엄마 품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아이는 기어코 훌쩍 자라 엄마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촘촘했던 그 곳이 휑하니 비었을 때, 흰머리 가리기가 버거워질 때, 비로소 아이는 어른이 된다. 몸 조심해라, 잘 챙겨먹어야 한다, 크는 내내 들었던 온갖 잔소리를 하루 또 부쩍 작은 엄마에게 돌려준다. 이에 질세라 늙어 작은 엄마는 눈이 오면, 날이 춥거든 전화해
언젠가 방송 일 하는 노동자가 눈 많이 오던 날 밖에서 카메라 돌기를 기다리느라 눈사람이 됐던 일이 화제가 됐다. 마트 일 하는 노동자가 눈 쏟아지던 날, 부당한 정책을 규탄하느라 눈사람이 되는 일은 좀처럼 화제가 되질 않는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다. 꼼짝않고 서야 했던 사람들은 젖은 바닥에 앉지 않았던 걸 다행으로 여겼다. 언제나처럼 할 말이 많
자식 앞세운 엄마가, 동료 먼저 보낸 노동조 활동가가, 또 온갖 차별에 설움 복받친 비정규 노동자가 울고 더 울었다. 법원 앞에서, 분향소 옆에서, 어느 번듯한 원청 본사 앞길에서 꺽꺽 울음 먹고 버텼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어 눈물이 곧 영정 위로, 바닥으로 흘렀다. 금세 옆 사람 눈이 따라 붉었다. 같이 울었다. 설렁거리던 사진기자가 바닥을 기며 잠시 바빴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느라 눈에 힘을 주곤 했다. 웃을 일이 많지 않았지만 웃음이 없지도 않았다. 연대하러 먼 길 달려온 사람의 손을 잡고, 옷깃 여며 주
법원은 끝내 참담한 죽음의 책임을 원청에 묻지 않았다. 용균이 엄마가 주저앉아 소리쳤다. 울었다. 곧 눈물 닦고 입술을 꽉 물었다. 언제나처럼 전화기에 적어 둔 글을 기자들 앞에서 읽었다.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다. 쉬운 말로 어려운 얘기를 익숙하게 풀어냈다. 종종 고개 들어 카메라 바라보는 눈에 물 고여 붉었다. 아들의 5주기, 엄마는 법 앞에 울었
규탄하고 촉구할 것이 많아 길에 나선 사람들 구호 따라 입김이 뽀얗다. 맞춰 입기라도 한 것인지 검은색, 또 길고 두터운 패딩점퍼 차림 사람들이 팻말 든 손가락을 파고드는 한기를 어쩌지 못해 자꾸 꼼지락거린다. 그 중 누군가 곡기 끊고 말라가는 사람도 있어 추운 티를 내지 못한다. 동료가 건넨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철 따라 바람 따라 낙엽 구른다.길에 나서 말하기 고된 철이다. 설 곳 좁아 더욱 그렇다. 한때 울긋불긋 농성 천막 줄줄이 많았던 고용노동청 앞자리에, 또 기자회견 줄을 선 대통령실 앞에 질서유지선이 길
민주노총과 생명안전행동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정의당 의원들과 함께 30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직은 검은 머리 엄마가 흰머리 엄마 옆에 살갑게 붙어 웃는다. 그 주름 많은 얼굴 살피며 때때로 찡그린다. 두꺼운 검은색 겨울 점퍼 차림 두 사람이 천막을 드나든다. 거기 얼굴 없는 검은색 영정이 줄줄이 걸려 있다. 향내 짙어, 분향소다. 흰머리 엄마가 그 앞에서 분주하다. 검은색 영정을 세우고 흰색 국화를 붙인다. 검은 머리 엄마가 먼저 보낸 아들의 5주기 추모 기간을 선포하는 자리를 흰머리 엄마가 꾸민다. 일하다 죽지 않게, 그 당연한 말을 하느라 사람들이 팔 들고 벌을 선다. 내 아들을 살려 내라, 그 가망 없는 말을 외치느
민주노총·민주노총 지역본부 임원 동시선거 투표 첫날인 21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공공운수노조 서울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조합원이 투표하고 있다. 노동사회단체가 2015년 10월 당시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이 ‘개혁인지 재앙인지’ 묻기 위해 진행한 ‘을들의 국민투표’ 기표대를 사용하고 있다.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 5주기 추모위원회’가 20일 서울 서대문 디엘이엔씨 본사 건물 앞 고 강보경씨의 분향소에서 고 김용균 5주기 추모기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photo@labortoday.co.kr
아직은 노란 머리숱 많은 나무 위로 눈이 내렸다. 두툼한 옷 입은 사람들이 휑한 목을 가리려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빌딩 숲 사잇길 된바람에 후두둑 바짝 마른 잎 떨구니 길바닥엔 낙엽이 쌓이고 구른다. 겨울이다. 노란 잎 쌓인 거기 바닥엔 또 사람들이 앉아 버틴다.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어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와 함께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과 진짜사장 건강보험공단이 책임질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랗게 물든 가을 위로 사람이 조르륵 앉아 일한다. 옛 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붙은 어처구니를 닮았다. 귀신을 쫓기 위해 올린 것이라는데, 이제는 거기 CCTV가 그 비슷한 노릇을 한다. 잘 보이라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건 여전히 사람 몫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흔히 쓰인다.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상황을 이른다. 국정감사 한창이었던 저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현대해상 콜센터 노동자들이 23일 서울 영등포구 현대해상 빌딩 앞에서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총파업 투쟁으로 임단협 투쟁 승리하자! 현대해상 콜센터 상담사 차별 철폐를 위한 2차 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권 성과급 차별에 항의하고 휴게시간 30분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앞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