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은 필수노동, 공적 돌봄에 대한 사회적 감각을 촉발했다. 하지만 여전히 돌봄은 ‘여성의 일’ ‘부차적 일’이라며 평가절하되고 있으며 이는 공동체 안에서 돌봄의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는 이유가 되기도, 돌봄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조건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회적 책임이 방관된 채 난립하는 민간 돌봄기관의 사유화는 돌봄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강화해 왔고 ‘공적 돌봄’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이윤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묻어 버렸다.돌봄의 역할을 국가가, 공공이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아프면 쉴 권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에는 전염병 관리가 최우선의 과제이다 보니 감염된 노동자들이 계속 일하면 전염병이 더 확산돼 전염병 관리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더 강조됐다.하지만 감염병 관리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아플 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하는 것은 사회보장 제도에서 아주 중요한 한 축이다.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는 주로 4대 보험으로 대표된다. 다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적은 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건강보험, 실직했을 때를 대비한 고용보험, 나이들어 일하
지난달 22일 반갑지만 가슴 저린 업무상 재해 인정 소식을 접했다.서울남부질병판정위원회가 삼성반도체 오퍼레이터 노동자의 태아 3명에 대해 △근무 중에 다양한 생식독성 및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에 노출된 점 △과거 사업장 환경상 유해물질에 많이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중대한 기형의 경우 출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반도체 업종 여성 근로자에게서 유산의 증가가 확인되는 점 △사무직 전환 후 태어난 아이가 건강한 점 등을 이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2021년 5월 신청 후 3년 만의 결과이다.지난 1월1
수년 전, 일하다 무릎을 다쳐 우리 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노동자가 있었다. 명백한 사고였기에 산재 승인은 어렵지 않게 이뤄졌지만 얼마 후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 발병했다. 바람만 스쳐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통증’이 유발된다는 희귀질환이다. 업무 관련성을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질환이었지만 사고로 인한 부상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기에 장해급여를 신청했고 다행히 승인됐다.그런데 장해판정을 받을 당시 그가 겪은 일은 충격적이었다. 장해판정을 받으러 간 그는 자신을 ‘검사’할 공단 자문의에게 “CRPS환자이니 제발 무릎을 건드리지
“한강 물도 녹을 때 한쪽부터 살살 녹지 일시에 녹지는 않지 않습니까?”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료 징수에 대한 정부안을 설명하던 당시 김성중 노동부 차관의 말이다. 통상 산재보험료는 사업주가 100% 부담하는데 특고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각각 2분의 1씩 부담하도록 하겠다며, 꽁꽁 언 한강이 차차 녹듯이 단계적으로 산재보험 제도 내로 편입하겠다는 정부의 뜻을 밝혔다. 향후 사용종속관계의 정도 등을 고려해 사업주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특고노동자의 경우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겠다는 단서도
여성의 날이었던 3월8일, 서울 보신각에 700여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파업의 형태로 일터에서, 삶터에서 일손을 놓은 노동자들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돌봄의 공공성 강화, 모두의 노동권 보장,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등을 내걸며 투쟁했다.24시간과 일주일, 365일이라는 물리적인 시간. 계급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값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절하당하면서 가사와 돌봄의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은, 나의 시간표를 정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상상이 들어갈 틈도 없이,
소규모 사업장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사업’이 시작됐다.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22일까지 50명 미만 사업장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사업’에 참여할 단체모집을 공고했다. 이 사업은 인건비 부담으로 안전보건 전문가를 채용하지 못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공동으로 안전관리자를 활용할 수 있는 지원사업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업종별 사업주단체-협동조합, 협회, 산업단지관리공단 등이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면 소속 회원사는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받는다. 한 해 600명의 공동안전관리자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으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대대적으로 벌였던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산재 추정의 원칙’과 ‘산재 환자 전용 특별수가’ 도입 등이 산재 부정수급자 증가, 산재기금 부실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일명 '나이롱환자'와 이들 덕에 수익을 올리는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과 공단이 한통속이 돼 산재보험기금이 줄줄 새고 있다고 주장한 데에서 비롯된 감사다.감사 발표 결과 떠들썩했던 나이롱환자-병원-공단의 카르텔이 밝혀진 것은 없었다. 대신 ‘산재카르텔 의심 정황’이라며 노
지난해 11월27일 정부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올해 E-9(비전문 취업비자) 도입 규모를 16만5천명으로 정했다. 2021년 5만2천명, 2022년 6만9천명, 2023년 12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9만5천명, 조선업 5천명, 농축산업 1만6천명, 어업 1만명, 건설업 6천명, 서비스업 1만3천명, 탄력배정 2만명을 배정한다.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 규모 확대가 내국인이 기피하는 빈 일자리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외국인력 신속 도입과 안정적인 정착 등 체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그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 6일 첫 본회의를 열고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산업전환, 인구변화,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등 아직 구체적인 의제조차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정부의 ‘주당 69시간 개편안’이 남긴 파장 덕분에 당장 주목받는 사안은 단연 노동시간 개편안이다. 이에 발맞추어 한국경총은 지난 13일 ‘장시간 근로자 비중 현황 및 추이 국제비교’ 보고서를 발표하며 “장시간 근로 해소가 정책 목표가 될 시기는 지났다”, “규제 위주 근로시간 정책 패러다임을 유연성과 생산성을 제고할 수
온통 ‘민생’을 부르짖는 시간이다. 수많은 의제가 선거 이후로 밀려나지만, 늘 선거 전이거나 직전인 한국 정치에서 ‘민생’만은 언제나 상시적 의제다. 그런데 민생은 누구의 생인가. 정부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더라도 하루 최소 6~7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에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을 제 날짜에 시행한 것이 “민생을 외면”한 것이라니. 이런 정부와 여당의 반발을 보며 찾아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민생이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를 의미한다고 풀어쓰고 있다. 그렇다면 “민생을 위해 5
벌써 11명째다.1월26일 8시10분경 부산시 기장군 치유의 숲 벌목작업 현장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은 노동자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안타깝게도 다음날인 1월27일 사망했다. 지난해 12월20일부터 1월27일까지 부산에서만 11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11건의 중대재해 중 떨어짐사고로 무려 8명이나 사망했고, 맞음사고로 2명, 깔림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이중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5건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항만·선착장·제조업·도소매업·부동산관리업·벌목현장 등 다양한 업종과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한도 위반에 대한 행정해석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약 한 달 전에 있었던 대법원 판결을 반영한 것이며 발표 즉시 적용된다. 기존에는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을 연장근로로 판단했으나 변경된 해석에서는 1주일 총 노동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을 연장근로시간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13시간씩 주 4일을 일한다면 기존의 방식에서는 하루에 5시간씩 총 20시간의 연장근로로 계산돼 주당 12시간으로 연장근로가 제한된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위법이 된다. 그러나 변경된 행정해
2022년 5월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57.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문체부)”을 위해 “(예술인 복지 안전망 강화)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자 확대, 산재보험 적용 확대, 저소득 취약예술계층 국민연금 지원 강화, 예술인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 주요 추진내용을 밝혔다. 예술인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국내 예술시장의 성장 등 예술생태계의 자생력 확보, 안정적인 예술 창작여건 조성과 장애예술인의 제약 없는 예술활동 기회 보장 등 기대효과를 제시했다.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근로자를 대상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50명(억원)미만 사업장 적용(1월27일)을 보름 남짓 앞둔 지금까지도 정부와 여당, 재계는 적용유예 기간 연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25일 한 번의 국회 본회의가 남았으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자세다. 재계의 연이은 입장표명에 이어 지난 9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면시행 전까지 적극적인 개정안 논의 및 신속한 입법 처리를 간곡히 요청드린다”는 정부 입장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전면적용을 위한 최종점검을 하고 있어도 모자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불안과 혼란뿐이라니.
“이 사건 문서제출명령 신청은 이유 있으므로 문서소지인(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은 이 결정을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원고의 재해 관련 판정위 심의회의 회의록 내지 녹취록(녹취파일)을 제출하라.”법원에서 위와 같은 취지의 명령을 받았다. 질병판정위에서 무슨 논의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업무상 질병 불인정 관련 소송을 진행하며 아무리 판정서와 위원별 의견을 들여다봐도 누가 무엇을 근거로 어떤 심의를 해서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록되어 있지 않았
지난 21일 부산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호 선고 판결이 있었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부산지법 형사 4단독 장병준 부장판사는 피고들의 법 위반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사업장 종사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반복되는 중대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고인들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에게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원청 대표자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원청업체인 성무종합건설 법인에는 5천만
12월 임시국회는 여야 간 대립으로 난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민생법안을 조속히 해결해 보겠다며 가동한 ‘2+2 협의체’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가 여당에서 민생법안으로 제시됐다는 소식은 참으로 황당하다. 감히 ‘민생’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 법을 처리할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민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참담할 따름이다. 자신의 사업장의 위험에 대해 무관심하고 묵인하고 방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가 아무 책임을 지지 않게 두는 것이 어찌 민생을 살리는
12월11일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비상상황 대비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추락·끼임 등 산업재해, 사업장 화재, 노동자의 심정지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초 발견자나 주변 노동자의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비상상황에 미리 대비하라는 것이다. 비상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 방법 중 하나로 노동부는 배포한 가이드라인을 참조해 사업장에 맞는 비상상황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상상황 3대 원칙으로 △노동자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 사항으로 둔다 △예상 가능한 비상상황에 대해 대책을 마련한다 △실제 이행가
고용노동부가 위험성평가 의무화를 위해 도입하기로 했던 처벌조항을 연내에 발의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지난 5일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노동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제재규정 신설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령 정비추진반 운영을 통해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진행했고, 추가적인 의견수렴과 논의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발표 이후 노동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제시했고 그 중심에는 위험성평가가 있었다. 감독과 처벌 중심의 예방정책의 한계를 각 사업장이 위험성평가를 통해 스스로 유해위험요인을